[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89> 스토라(Stora) 따라잡기

1900년대가 시작할 즈음에 우유는 마개 없는 병에 넣어져 배달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유 표면을 따라 크림이 만들어진다. 정원에 사는 박새와 울새는 이것을 쪼아 먹었다. 1930년 즈음 우유병은 얇은 알루미늄 뚜껑으로 밀봉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쯤 지나 영국 전역에서 박새들은 이 알루미늄에 구멍을 내는 방법을 학습했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89> 스토라(Stora) 따라잡기

그러나 울새는 깨닫지 못했다. 울새는 영역을 지키는 습성이 있고,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주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반대로 박새는 5~6월에 쌍으로 지내고, 7월이 되면 무리를 이룬다. 8, 10, 12마리로 이뤄진 무리는 이 정원 저 정원을 몰려다닌다.

'존속기업(The Living Company)'의 저자 아리 드 회스의 표현을 빌리면 기업이란 놀라운 조직이다. 긴 인류 문명사에서 고작 500년 전에 출현해 지금 같은 번영을 이뤘다. 동시에 기업은 지극히 실패한 조직이다. 1990년 미국 포천 500 기업 가운데 2010년까지 버틴 기업은 24% 남짓이었다. 1970년 포천 500 기업 가운데 3분의 1은 채 15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너무도 성공한 조직이지만 영속하지는 못한다.

왜 그럴까. 현대 경영 기법으로 무장했다. 그러나 수명은 기껏해야 네안데르탈인 수준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회스는 100년을 넘긴 27개 기업을 골라낸다. 공통점을 찾아본다.

가장 큰 특징은 변화 경영이다. 1590년 리에몬 소가가 문을 연 가게는 지금 스미토모로 불린다. 스웨덴 스토라는 중세시대 때 광산으로 시작해 종교개혁, 산업혁명과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었다. 이 기간에 스토라는 광산에서 벌목 사업으로, 철광석 제련과 수력발전으로, 다시 펄프와 제지로 모습을 바꿨다. 이들은 변화된 환경을 수용했고, 학습과 적응은 공통 특징이다.

다른 특징도 여럿 있다. 재정 면에서는 보수성이 짙다. 불필요한 위험은 피했다. 여유분은 기꺼이 적립했다. 이것은 필요할 때 경쟁자를 압도하는 등 기회를 제공했다. 세 번째는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대부분 경영진은 바닥에서부터 올라왔고, 기업 문화에 익숙했다. 자신이 넘겨받은 건강한 상태로 후임자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사명이 강했다.

네 번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용인하는 문화다. 윌리엄 러셀 그레이스는 1845년 페루에서 시작됐다. 첫 상품은 구아노(Guano)로 불리던 바닷새 배설물이다. 자연 비료로, 괜찮은 수입원이 됐다. 설탕과 주석으로 옮겨간다. 다시 팬암항공을 설립했고, 지금은 화학과 의료가 주업종이다. 어떤 기업이든 100년을 넘어서려면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89> 스토라(Stora) 따라잡기

우리에게 어떤 지혜를 남겼을까. 회스는 세 가지를 생각해 보자고 한다. 첫째 자산 대신 사람을 경영하는 것이다. 27개 기업이 모두 적어도 한 번은 업종을 바꿨다. 생존을 위해 사업을 뒤엎어야 했고, 올바른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둘째 강한 통제 대신 상황을 살펴볼 여유와 느슨함을 남겨 뒀다. 기업 경영은 가지치기와 비슷하다. 가장 튼실한 가지 몇 개만 남기고 잘라낼 수도 있고 넉넉히 남겨둘 수도 있다. 몇 해 두고 보면 가끔 약한 가지가 힘을 찾기도 한다. 이 방법이면 동네에서 가장 큰 꽃을 얻지는 못하지만 매년 좋은 장미를 얻을 수 있다.

셋째 학습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생존 기업은 환경을 다르게 인식한다. 한때 번영하는 것과 영속하는 것은 전략부터 다르다. 전자는 자원에 매몰되지만 후자는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고, 이 때문에 학습은 중요하다.

리에몬 소가의 주업은 구리 주조였다. 공교롭게 스토라도 700년 전에 문을 연 구리 광산이 모태가 됐다. 어쩌면 이들 기업의 긴 수명은 구리 성질을 닮아 있는 것 같다. 얇게 펴지고, 길게 늘어나고, 전도성도 좋다. 녹는 온도도 낮다. 회스가 찾아낸 이들의 특징도 마찬가지였다.

환경에 맞춰 모습을 바꿨다. 유연해야 했고, 학습하는 조직이어야 했다. 능력은 결국 사람에게 체화되는 것이다. 미국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자 앨런 윌슨의 비유가 문득 떠오른다. “진화를 생각할 때 학습 능력이 좀 낮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새가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