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영국은 혼란기였다. 1013년 덴마크왕 스웨인 1세에게 정복당한다. 1042년에는 앵글로색슨계 에드워드가 돌아와서 왕위에 복귀한다. 그러나 곧 내전에 휩싸이고, 결국 웨섹스 귀족 해럴드 고드윈슨이 왕좌를 물려받는다. 고드윈슨에게는 여러 경쟁자가 있다.
1063년 르웰린 압 그루피드가 이끄는 웨일스 봉기를 진압한다. 이럭저럭 내분이 진정될 즈음에 노르웨이왕 시귀르드손이 침공한다. 고드윈슨은 런던을 떠나 300㎞를 북상한다. 그의 빠른 진군을 예상치 못한 노르웨이군은 혼란에 빠진다. 더웬트강 스탬퍼드 다리에서 고드윈슨은 대승을 거둔다. 승리를 자축하며 남하하던 그에게 새 전령이 도착한다. 노르망디공 윌리엄이 6만명을 이끌고 남부 해안 헤이스팅스에 상륙했다는 것이다.
고드윈슨은 닷새 만에 런던으로 회군, 증원군을 소집한다. 적군을 맞아 남하하기로 한다. 지치기는 했지만 스탬퍼드에서처럼 빠른 대응이 승리를 가져다주리라 생각했다. 10월 14일 새벽 센레크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전투가 시작된다. 앵글로-색슨군은 굳건히 방패 뒤에서 버텼지만 노르만 중장기병대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이렇게 여운을 남긴다. “그 날 해럴드 2세 병사들이 스탬퍼드 전투와 긴 행군으로 지쳐 있지 않았다면 영국 역사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라고.
최신 경영 기법으로 무장한 현대 기업의 생존율 성적은 참담하기만 하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모든 경쟁에서 이길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지속 성장할 수 있을까.
보스턴컨설팅그룹 파트너인 마틴 리버스와 요한 하르노스는 단순히 경쟁에서 성공한다는 것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역동하는 환경 속에서는 재창조가 필요하다. 두 저자는 양손잡이(ambidexterity)의 능숙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수익을 거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는 것이다. 성장 전략이란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잡는 것이다.
두 저자가 찾은 많은 기업은 균형을 잃고 있다. 성장하고 성숙할수록 전자에 탐닉하고 있다. 불균형의 대가는 분명했다. 배당금은 많은 주주를 기쁘게 했지만 어느 순간 성장은 더뎌지고 있었다. 성공 함정에 갇힌 기업은 성장률이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더 나을 것이라던 주주 총수익률도 오히려 더 낮았다. 저자는 이것을 승리가 만들어 내는 함정이라고 부른다.
기업은 네 단계를 거치며 성장한다. 탐색기 성장은 지지부진하다. 그러나 투자가 성공하면 성장과 수익으로 돌아온다. 다른 투자가 시작될 때까지 기업은 높은 성장률과 수익률을 누릴 수 있다. 단지 수확을 끝내기 전에 새 투자를 시작하면 성공 기쁨을 만끽할 수 없다. 기업에 주저함이 생긴다. 방금 생존을 위한 모험을 끝낸 참이다. 잠시 번영을 누리고 싶다. 성공 함정은 생존-번영 사이의 모호한 지점에서 싹을 틔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저자는 '전략에 전략 방향을 정하라'고 말한다. 어떻게 경쟁하고 제품을 차별화할 것인가는 중요하다. 경영의 한 부분, 한 단계를 개선하고 미세 조정을 해 가면 성공은 담보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일단 록인(lock-in)이라 불리는 과정이 시작되면 10개 가운데 7개 기업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이전에 다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지나간 성공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
해럴드 2세는 고작 1년 동안 통치했다. 많은 사람이 나약한 왕으로 기억하지만 정작 용맹한 전사였다. 단지 그에게 여러 경쟁자가 있었다. 무척이나 용맹하던 그는 한 사람씩, 한 전투씩 상대해 갔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마지막에 남아 있었다. 9월 25일 스탬퍼드 전투에 승리하고 고작 20일밖에 안 지난 후에 치른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패해서 죽음을 맞는다.
성공과 성장 사이에는 오묘한 차이가 있다. 한 가지씩 경쟁에서 이기면 성장하리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두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이런 상식과 다르다. 모든 성공이 그것으로 전부가 아닌 셈이다. 두 저자가 말하는 전략에 전략 방향을 정하라는 것도 이것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