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통신 필수설비 제도 연구반'을 가동하며 제도 개선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필수설비 의무 제공은 KT가 관로, 전신주, 케이블 필수설비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경쟁사가 요구하면 반드시 개방하도록 의무를 부과한 제도이지만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자 전반에 걸친 개선을 시도한 것이다.
본격 제도 개선에 앞서 우선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문제점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개선점을 찾는 일이 선결 조건이다.
◇필수설비 예외 기준, 명확한 정의와 점검부터
법률로 정해진 필수설비 제공 의무를 두고 갈등이 발생하는 지점은 '예외 규정'이다. 현행 예외 규정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모호한 부분은 없는지를 세밀한 연구와 점검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기통신사업법은 필수설비 제공 예외로 △사용 계획이 확정된 경우 △여유 공간이 없는 경우 △구축 3년 미만 설비 △2006년 이후 구축한 광케이블 △타 통신방송사 인입 관로가 존재하는 경우 등을 규정했다.
예외 규정 자체가 과도하다는 지적과 동시에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편법으로 인한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통신망을 구축하려는 사업자는 건물 내 가구수 등을 고려해 관로 여유가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만 제공 의무 사업자는 회선이 부족하다며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영업 비밀을 이유로 갈등이 발생, 정부 현장 감독권과 명확한 공개 규칙을 제정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구축한 지 3년이 넘은 관로 내에 소규모 인입선을 새롭게 구축해 3년 미만 구축 설비화 문제도 지적된다. 이 경우 어떤 사례까지를 3년 미만 또는 초과 설비로 볼 것인지 등 세부 규정이 필요하다.
◇유명무실 공동 구축 제도, 관리감독 강화 필요
통신사 가운데에는 인터넷 망을 건물 앞까지 끌고 가더라도 필수설비가 없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라스트 원마일' 문제라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축 건물에서 필수설비를 공동 구축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운영 미숙으로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3년간 공동구축 실적은 693건에 불과하다.
옛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5년 4월 '전기통신설비 공동 구축을 위한 고시'를 공표하고 5월부터 시행했다. 건물을 신축할 때 반드시 여러 통신사가 전기통신 설비를 함께 깔도록 해 경쟁 제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구상이다.
공동 구축 대상 지역에는 '연면적 2000㎡ 이상(대략 6층)'의 개별 건축물도 포함된다. 개별 건축물에서는 과거 공기업에만 연락하던 관행이 이어지면서 KT 설비만 이용하는 일이 많다는 게 KT를 제외한 통신 업계의 문제 제기다.
입주민 편의를 위해 다수의 통신사 설비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적극 계도 활동과 동시에 현재 사업자 자율로 맡겨져 있는 설비 구축 논의에 정부 점검과 감독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와 함께 4층 이하 중소형 건물에도 필수설비 공동 구축 의무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한 데이터는 제도 개선 전제 조건
필수설비 제공 확대 찬·반 논의에 앞서 명확한 데이터 확보도 중요하다.
KT는 통신사업자가 공동 구축한 '설비정보제공시스템(FIPS)' 전산망에 의무 제공 대상인 필수설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으며, 이용률도 96%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중앙전파관리소의 정기 점검도 받고 있다.
반면에 후발 사업자는 애초에 FIPS를 통해 이용 가능한 설비가 지극히 제한됐다는 불만을 제기한다. 구축 3년 미만 설비 등 90% 이상이 이용 불가능한 필수설비라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KT가 총연장 12만4000㎞ 관로를 보유했지만 후발 업체가 빌려 쓰는 관로는 940㎞(0.7%)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필수설비 갈등은 대부분 인입 관로를 포함한 라스트원마일에서 발생하는 만큼 관로 제공 규모 데이터는 무의미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정부 감독 아래 후발 사업자가 필수설비 활용에 얼마나 불편을 겪는지 등 명확한 객관 데이터 확보 필요성이 제기된다.
5세대(5G) 이동통신망 조기 구축을 위해서도 필수설비 공동 활용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과 관련해 이동통신 백홀망의 유선 필수 설비 이용 실태 등 명확한 점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국회가 필수설비 제도 개선에 나선 만큼 통신사업자 간 논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논쟁에 앞서 필수설비 가치와 논의 필요성 공감대 형성도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필수설비 문제는 KT와 반KT 진영으로 나뉜 감정싸움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투자 활성화, 소비자 편익, 경쟁 활성화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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