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95> 광각렌즈로 보기

2002년에 노키아는 모델 6650을 출시한다. 세계 최초의 3G폰이다. 이해 1000만대 넘게 팔린 폰의 5대 가운데 3대가 노키아 것이다. 모델 6100, 6610, 3510은 1500만대씩 팔려 나갔다. 2003년에도 변동이 없었다. 5대 가운데 4대가 노키아 폰이었다. 이 가운데 모델 1100은 무려 2억5000만대 팔렸다.

2004년도 마찬가지다. 삼성, 모토롤라, 소니에릭슨 1종씩을 제외한 13개 종이 노키아 것이다. 2600 시리즈는 훗날 페라리폰으로 불린 모토로라 레이저마저 제친다. 2002년부터 아이폰이 출시된 2007년까지 글로벌 베스트셀러의 7할이 노키아 제품이었다. 노키아의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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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 경쟁력의 핵심은 맞춤식 기기에 있다. 부품과 프로그램을 섞고, 고객 취향에 기능을 맞췄다. 텔코라 불리는 통신사업자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기종을 만들어 내는 핀란드 기업의 능력을 당할 경쟁자는 없었다. 맞춤 방식은 텔코와 소비자를 기쁘게 했다.

그러나 곧 부담으로 다가왔다. 온갖 취향을 맞추자니 필요한 기종과 소프트웨어(SW)에 끝이 없었다. 노키아, 텔코, 소비자, 프로그램 개발자가 모두 만족해야 하는 비즈니스다. 심비안이라 불리는 새 운용체계(OS)도 만들었다. SW 개발자를 끌어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서서히 '윈루즈윈(win-lose-win)' 함정으로 빠져들게 된다.

많은 기업이 윈윈 전략을 꿈꾼다. 협력이 성공하는 지름길이라고 배웠다. 누군가 성공하지만 대부분 그렇지가 못하다. 공조혁신은 왜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일까.

론 애드너 미국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 교수는 윈윈 방식에는 몇 가지 성공 원칙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가치사슬 참여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 상식은 소비자 만족이 우선이다. 그러나 이것에 매몰될 때 실패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서 개발자로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있다. 아마존 킨들은 출판사에 수익을 보증하고서야 성공할 수 있었다.

둘째 가치사슬에 초점을 맞춰라. 상식은 혁신 제품이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애플에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와 음원 공급자가 있었듯이 종종 가치란 파트너와 함께 만들어진다. 자기 제품만 바라보는 좁은 시야를 버려야 할 때가 있다. 셋째 혁신을 스마트하게 적용하라. 노키아는 텔코와 소비자 취향에 맞춰 수많은 모델을 만들었다. '하드웨어(HW) 커스터마이징'은 노키아의 경쟁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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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G와 3G폰 시장을 석권한다. 애플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우선 HW는 하나로 통일했다. 앱 개발자에게 목표는 단순해졌다. 이런저런 기종에 맞춰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이폰에서 작동하는 최고 앱이면 그만이다. 선택은 소비자 몫이다. 앱은 소비자가 선택해서 깔면 그만이다. 포장을 풀 때까지 똑같던 아이폰은 소비자 손에서 수없이 많은 맞춤식 기계로 재탄생된다.

애플은 이렇게 커스터마이징이란 과정을 재해석한다. 애드너 교수는 혁신을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보라고 조언한다. 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라. 그러면 여태껏 보이지 않던 혁신 방식이 보인다고 말한다. 협력(cooperate)에서 공동 창조(co-create) 그리고 다시 공조 혁신(co-innovate)으로 진화하라고 말한다.

애플이 첫 아이포드를 출시했을 때 음원 공급자는 꼭 필요한 협력자였다. 아이튠스는 일종의 장터가 됐다. 아이폰은 앱 개발자와 공동 창조 결과물이다. 아이패드가 만들어질 즈음 온갖 종류의 콘텐츠와 앱 개발자가 참여한다. 혁신의 도관(conduit)은 이렇게 번져 간다.

'혁신은 천 개의 가닥으로 이어져 있다'로 소개된 그의 저서 원제는 '광각렌즈(The Wide Lens)'다. 혁신을 자신의 제품에다 좁혀서 보지 말고 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라는 얘기를 담았다. 그는 혁신을 퍼즐 맞추기에 빗대어 말한다.

“퍼즐을 맞춘다고 생각해 봐요. 결국 여러 조각을 다 맞춘 뒤에야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있죠. 혁신도 그런 것 아닐까요.” 광각렌즈로 볼 때 풍경은 비로소 그 형체를 보여 준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