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취지는 충분히 공감가지만 의료 현장은 혼란스럽습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로 가득한 의료 현장과 복잡한 가족 구성원을 볼 때면 죽음 선택을 법으로 재단하는 게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조영재 분당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의료진 입장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은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면서 매일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본다. 법에서 정한 연명의료결정 대상자를 보면서 변수가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감한다.
조 교수는 “법이 정한 대상과 진행과정은 명확하지만 연명의료 중단을 문제없이 마무리하는 사례는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면서 “예상하는 것보다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확인하고 집행하는 것은 변수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기 환자를 대상으로, 환자 스스로 의사를 표시하거나 가족 전원 합의하면 의료진 동의하에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문제는 환자가 의식이 없거나 평소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운 때다.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모두 해당 사항이 없으면 형제·자매 등 가족전원합의가 필요하다. 가족 합의가 안 되면 연명의료결정이 불가능하다.
조 교수는 “최근 한 임종기 환자도 가족 간 연명의료결정을 안내했는데, 자녀끼리 의견일치가 안 돼 연명치료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가족 간 의견일치가 됐어도 직계비속, 존속이 아니면 법 적용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의료진-환자 간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그는 설명한다. 환자, 정부, 사회가 의료진을 신뢰한다면 법까지 제정할 필요가 없다. 의학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임종과정을 명문화하고, 가족 간 동의를 요구하며 의사 처벌조항까지 제도화됐다.
조 교수는 “법이 만들어진 근본 배경은 의사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면서 “의료진은 기본적으로 환자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지만 신뢰에 금이 가면서 제도적으로 의료행위를 규정하고 의사는 방어적으로 행동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생명에 가치를 매길 수는 없지만 연명치료를 이어가는 환자보다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중환자실에 두는 것은 합리적”이라면서 “법의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이번 기회로 환자-의료진 간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
정용철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