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은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을 북돋우기보다 저해하는 규제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한국공학한림원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개최한 '코리아 리더스 포럼'에 행사 진행자로 나와 모두 발언에서 이같이 피력했다. 이날 포럼 주제는 '일류 국가로 가는 법과 규제의 혁명'이었다.
김 사장은 “4차 산업혁명의 '쌀'이라고 불리는 빅데이터 분야는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에 막혀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면서 “이제 현실이 되고 있는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역시 항공법 등 여러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장은 “4차 산업혁명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사정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면서 “더 이상 규제 때문에 머무를 시간이 없다”고 위기감을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정부 규제로 투자나 사업에 차질을 빚은 사례가 많다. 최근에는 반도체 신공장 건설 인·허가가 지연돼 착공에 차질을 빚었다. 화성시는 삼성전자 반도체 신공장이 들어서면 주변의 일대 교통량이 증가할 것이라며 700억원 규모의 지하도로 건설을 요구했다. 도시교통정비촉진법 내 교통영향평가 항목을 근거로 들었지만 삼성전자는 자세한 사유 없이 제시된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결국 추후 평가 결과를 보고 논의하자는 제안을 하고 나서야 인·허가를 받아냈다. 착공은 당초 목표보다 약 한 달 지연됐다. 김 사장은 이날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기업체 입장에선 (규제 탓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교수는 포럼에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합쳐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법령은 4000개에 이른다”면서 “이 가운데 90%에 해당하는 행정법 대부분이 규제성”이라고 꼬집었다. 전 교수는 “역대 정부는 행정법 내 규제 조항 수 줄이기를 개혁이라고 봤다”면서 “2개 조항을 1개 조항으로 단순 병합해 놓고선 그것이 규제 개혁 실적으로 보고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었다”고 성토했다. 그는 “미국과 영국은 변호사 자격을 현지 법조 협회에서 주지만 한국은 정부가 이 모든 것을 관장한다”면서 “정부 영역에서 시장으로 보낼 건 보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입법부 문제도 지적됐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개별 의원은 분야별 최고 수준의 인재지만 최대 목표는 정치인 개인으로 재선, 정당으로 집권이다 보니 규제 혁명은 요원하다”고 질타했다. 홍 교수는 “과학기술 연구개발(R&D),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규제 개선보다 청년수당·아동수당 같은 복지 예산 확대에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결국 개별 사안에 문제를 집중 제기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광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기술규제센터장은 “국회 차원에서 규제를 한 번 걸러 주는 사전 검토 절차 제도나 이런 일을 하는 상임위 또는 특위 설치를 제안한다”면서 “규제 개혁 관련 연구 역시 확대돼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