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크리스마스와 구상나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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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트리는 매년 많은 사람을 설레게 하는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답게 해 주는 대표 소품이다.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나무는 다름 아닌 한반도 토종 수목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는 모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실내에 들여놓았을 때 적당한 높이여서 장식물 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우리나라 토종 나무가 어떻게 미국이나 유럽의 가정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 살리기에 한몫을 하게 됐을까. 1907년 프랑스의 한 신부가 제주도에서 구상나무를 채집해 미국의 스미소니언박물관에 표본을 기증했고, 여기에 관심이 있던 하버드대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이 '아비에스 코리아나'라는 학명으로 세계식물학회에 발표했다.

이후 세계로 퍼져나가 각 나라 육종가에 의해 다양한 품종으로 개량되고 특허 등록돼 현재 약 90종의 구상나무 품종이 크리스마스트리로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구상나무로부터 발생한 이익은 오로지 판매한 나라만이 가질 수 있었고, 구상나무 원산국인 우리나라는 아무런 이익도 취할 수 없었다.

김태만 특허청 차장
김태만 특허청 차장

이런 사례가 반복되면서 국제사회는 이를 생물 해적 행위로 규정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생물자원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공정하게 공유하자는 자원 제공국의 제안이 세계의 공감을 얻어 1992년 '생물다양성 협약'이 채택됐다.

협약에 따르면 생물유전자원 접근에는 사전 승인이 필요하고, 자원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공정하게 공유해야 한다. 2010년 이 같은 내용을 확정해 '나고야 의정서'가 채택됐다. 나고야 의정서의 효율 이행을 위해 중국,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자원 제공국은 특허 출원 시 '유전자원 출처 공개 의무화'를 법제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자원 제공국 입장에서는 유전자원의 흐름 및 이로부터 발생한 이익 파악이 쉬워졌다. 그러나 자원 이용국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앞으로 자원 제공국의 생물자원을 이용해서 개발된 바이오 신약, 종자 등은 특허 출원 시 반드시 특허 기술에 이용된 생물자원을 합법으로 취득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원 제공국에서는 특허를 받을 수 없다. 이는 수출할 때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하거나 자원 제공국의 법 위반을 이유로 민·형사상 소송에 휘말릴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 바이오 업계는 새로운 제품 개발 시 활용되는 유전자원의 해외 의존도가 높지만 나고야 의정서 발효에 대한 준비는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실시한 '나고야 의정서 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바이오 업계는 해외 유전자원 이용 비율이 41.2%에 이르지만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기업은 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응책 마련 시 어려운 점으로는 '법정 분쟁 대응' '국가별 적용 여부 등 정보 부족'을 꼽았다.

특허청은 이러한 기업 애로를 반영해 주요 국가별 출처 공개 요건 등이 포함된 '해외 출원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관련 정보를 제공, 법률 전문가 상담을 통해 현지 지식재산권(IP) 확보를 지원하고 있다. 전통 지식 및 특허 관련 생물 다양성 메타 정보를 '국가 생물 다양성 정보 공유 체계'에 탑재, 유전자원 탐색을 위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구상나무 사례와 같이 유전자원을 무단 수집하고 특허 받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바이오가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유전자원 이용 생태계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전략이 필요한 때다.

김태만 특허청 차장 taeman.ki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