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아이폰의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린 것과 관련해 해외 소비자들의 개인·집단 소송이 잇따랐다. 국내 법조계는 애플의 이 같은 행위가 개별 소송은 물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아이폰 게이트'를 초래한 애플이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 법률 위반
법조계는 고객의 동의·선택 없이 애플이 고의로 아이폰 성능을 떨어뜨리는 소프트웨어(SW) 업데이트를 실시한 것 자체가 정보통신망법 제48조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정보통신망법은 △누구든지 정당한 접근 권한 없이 정보통신망에 침입해서는 안 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정보통신시스템,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등을 훼손·멸실·변경·위조하거나 운용을 방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악성프로그램)을 전달·유포해서는 안 된다 △정보통신망 안정 운영을 방해할 목적으로 대량 신호 또는 데이터를 보내거나 부정한 명령을 처리하도록 하는 등 방법으로 정보통신망에 장애가 발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보라미 법무법인 나눔 변호사는 “기술 부분을 파악해야 하지만 애플이 고의로 아이폰의 성능을 떨어뜨린 것은 '해킹'으로 간주된다”면서 “잘못이 인정될 경우 정보통신망법 70조에 의거해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 등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애플의 잘못을 판가름할 키는 '정당한 사유'가 쥐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의 성능을 떨어뜨린 이유로 “고객의 아이폰 배터리 수명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애플이 정보통신망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고객을 위한 선택'이라는 변명이 '정당한 사유'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가능성은 안 보인다.
김 변호사는 “고객의 동의 없이 아이폰 성능을 원격 조정한 것이 과연 고객을 위한 선택, 즉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면서 “(성능 저하 SW 업데이트) 목적 자체가 정당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비판 고조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아이폰의 성능 저하를 은폐한 것은 애플이 고객 상대로 사기 행각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아이폰의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렸다'는 이유만으로 애플을 질책할 순 없다. '아이폰 이용자가 이 사실을 몰랐다'는 전제 조건이 달렸을 땐 상황이 달라진다. 외신은 아이폰 이용자가 인지·동의하고 SW 업데이트를 실시했느냐가 중요한 가운데 애플이 해당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경쟁사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쓸수록 닳는 '소모품'인 점을 인정하고 배터리 용량과 상관없이 오래 쓸수록 빨리 방전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제조사 서비스센터는 교체 가능한 배터리를 별도로 판매하고 있다. 비용은 5만~10만원이다. 배터리를 교체해서 기기 수명을 연장할 것인지 새 제품을 구입할 것인지는 소비자의 선택이다. 제조사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애플은 이 부분을 간과했고,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이통사 고위 관계자는 “애플의 의도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면서 “소비자가 느낄 배신감이 얼마나 클지 가늠이 안 된다”며 예의주시했다.
◇아이폰 이용자 구제 방법은
해외 아이폰 이용자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애플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에서도 소송 움직임이 감지, 배상 문제가 거론된다. 피해를 본 소비자가 애플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미국 소비자처럼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한국소비자원에 피해 구제를 신청하는 방법이다.
법조계에서는 국내 아이폰 이용자가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재산상 손해 정도'의 근거를 제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대가 애플인 만큼 법정 분쟁이 쉽지 않을 거란 견해도 우세하다. 그러나 법조계는 애플의 비도덕 행동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아이폰을 구입한 소비자가 정신 피해를 봤다면 '위자료' 정도는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소비자원은 아이폰 이용자가 애플로부터 피해를 본 것으로 판단될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피해 구제를 신청하라고 권고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아이폰 이용자가 피해 구제를 신청하면 해당 내용을 하나로 모아 문제를 파악한 후 애플의 잘못이 확인되면 피해 보상 등 절차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플, 무엇을 잃었나
애플은 신뢰를 잃었다. 신뢰도 추락은 아이폰 판매량과 직결, 금전 손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사는 애플 상황을 반영한 보고서를 연이어 발표했다. 시노링크증권은 내년 1분기(1∼3월) 아이폰X(텐) 출하량을 기존 전망치보다 1000만대 적은 3500만대로 추산했다. 뉴욕 JL워런캐피털도 부품 공급업체 주문량을 근거로 아이폰X 판매량이 4분기 3000만대에서 내년 1분기 2500만대로 감소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가도 급락했다. 26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애플 주가는 전날보다 2.5% 하락, 8월 이후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
대만 이코노믹데일리뉴스는 “애플이 내년 1분기 아이폰X 판매 전망을 기존 5000만대에서 3000만대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아이폰 조립업체 폭스콘의 중국 정저우 공장은 인력 채용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