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탁기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마지막 공청회를 앞두고 정부와 세탁기 제조업체들이 '현지 공장' 카드를 적극 활용한다. 미국 테네시·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운영하는 세탁기 공장 운영을 근거 삼아 세이프가드 발효를 저지한다. 아웃리치 전략으로 현지 주지사 등을 공청회에 세워 세이프가드 부당성을 강조하는 등 후방 지원도 도모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는 실제 세이프가드가 발효될 경우를 대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둘 전망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29일 미 세이프가드에 대응하기 위한 마지막 민관합동 대책회의를 연다. 지금까지 부처와 기업이 세웠던 세이프가드 대응 전략을 공유하고 1월 3일 예정된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서 밝힐 입장을 최종 점검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동 회의가 사실상 세이프가드 관련 마지막 회의가 될 것”이라면서 “공청회에서 주장할 의견을 점검하는 등 최종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세이프가드 권고안에 반박하며 미국 현지 공장 가동을 근거로 세이프가드가 의미없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앞서 ITC가 수입 세탁기에 저율관세할당량(TRQ) 120만대를 설정하고, 그 이상 수입하는 세탁기에 50% 관세를 책정해야한다는 권고안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삼성과 LG 미국 세탁기 공장 가동이 앞당겨지면 미국산 세탁기 비중이 늘어나 세이프가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 업계 측에서는 2019년이면 미국산 세탁기 점유율이 90%를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수입 세탁기 비중이 급격히 줄어 과도한 '관세폭탄'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공청회에서도 의견서 제출했던 현지 공장 운영 중심으로 세이프가드에 반대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면서 “또 세이프가드 발효에 대비해 TRQ 120만대를 넘지 않은 물량에 대한 관세도 줄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20만대 이하에 관세 0%를 적용하는 세이프가드 권고안 '2안' 채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산업부와 외교부 등 정부는 미국 정치·행정 관계자를 설득하는 '아웃리치' 전략을 병행한다. 우선 헨리 맥매스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와 빌 하슬람 테네시 주지사 등 우리 측에 우호적인 인물을 다시 한번 공청회에 참석시켜 세이프가드 부당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일종의 원군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맥매스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지난 10월 열린 ITC 공청회에서 “(한국 세탁기 수입 등)이번 건은 세이프가드 대상이 아니다”면서 “삼성전자에 어떠한 형태의 무역 제한을 가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LG전자는 테네시 주에 각각 세탁기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WTO 제소는 USTR 공청회에서는 숨겨둔 카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정부는 베트남 등 미 세이프가드 관련 국가와 함께 세이프가드 안건을 WTO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를 너무 자극하는 것은 역효과가 날 수 있어, 실제 세이프가드가 발효된 이후에나 WTO 제소를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WTO 제소는 최후의 보루에 가깝다”면서 “공청회에서는 현지 공장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산 세탁기 생산 비중을 높이려는 우리 기업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표>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세탁기 세이프가드 권고안
자료 : 미 ITC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