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위한 1차 협상을 마무리한 가운데, 향후 험난한 협상을 예고했다. 양측은 9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에서 상대방이 집중하는 분야를 확인하는데 그쳤다.
미국은 당초 예상대로 무역적자 최대 원인인 자동차 무역 균형을 위한 강도 높은 압박을 펼쳤다. 우리나라는 대표 독소조항으로 꼽혀온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ISDS)를 대응 카드로 뽑았다. 양국은 조만간 한국에서 제2차 협상을 가질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1차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미국이 자동차 무역균형을 강도 높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유명희 산업부 통상정책국장은 협상 직후 “미국 측 개정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건 곤란하지만, 자동차 분야는 집중해서 제기한 이슈”라고 말했다.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은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1, 2위 품목이다.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적자 상당액이 자동차 부문에서 발생한다.
미 무역대표부(USTR)도 성명을 통해 “미국은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등 주요 산업용품 분야에서 더 공정한 상호 무역을 하고, 수출에 영향을 주는 무역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제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자동차와 관련한 구체적인 협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통상 전문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비관세장벽이라고 여기는 한국의 시장 규제 해소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는 우리나라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자동차라도 미국 안전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업체당 2만5000대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쿼터(할당)를 설정했다. 미국 자동차 업계는 쿼터를 없애거나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 자동차 수리 이력 고지와 배출가스 기준도 USTR가 지속적으로 제기한 비관세장벽이다.
자동차부품은 우리나라가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임에도 미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 완성차와 자동차부품 분야 무역균형이 이슈로 부상함에 따라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의 미국내 생산 확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 경우, 우리나라 중소·중견 자동차부품업체의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추후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업계 간 긴밀한 공조가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개정을 주장한 ISDS는 미국 압력에 맞설 카드다. 한미 FTA 대표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ISDS는 우리나라 정부의 법·제도로 손해를 본 미국 투자자가 국제중재기구에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어 사법 주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난해 10월 이 조항을 근거로 미국 시민권자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처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협상에서 ISDS가 개정되지 않으면 비슷한 소송이 속출할 것으로 우려한다. 앞서 정부는 ISDS 개정 필요성을 꾸준히 거론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한미 FTA 개정협상 추진계획 국회 보고에서 ISDS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차 개정협상을 대비해 ISD 등과 관련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세부 대응전략을 마련할 방침이다.
한미 양국은 1차 협상에 이어 조속한 시일 내에 우리나라에서 2차 협상을 개최할 예정이지만, 타결까지 이르기에는 힘든 여정이 될 전망이다.
유명희 국장은 1차 협상 직후 “쉽지 않은 협상인 건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도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밝혔다.
양종석 산업정책(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
-
양종석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