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와 과학기술계, 법조계가 개헌안에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명시하는 등 위상 강화에 착수했다. 과학기술이 산업과 경제 발전 도구가 아니라 과학기술 가치를 담아 국민과 사회 전반에 확산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20일 국회와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최근 개헌 과정에서 과학기술 위상을 높이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공약에 따라 지방분권, 국민주권 강화 등을 담은 개헌을 상반기 내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1988년 9차 개정 헌법 시행 이후 30년 만이다.
과학기술계는 현행 헌법 제9장 127조 1항에 들어 있는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바꾸려 한다.
과학기술계는 현행 헌법에서 “과학기술이 국민경제 발전 수단으로 종속됐다”면서 “경제·산업 발전 도구로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사회 전반에 걸쳐 과학기술 자체의 가치를 담아야 한다'며 수정을 주장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초에 마련한 개헌안 원칙에 이 같은 요구를 일부 담았다.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인간성을 추가하고, 인간 중심 보호 문항을 명시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그동안 (헌법에) 과학이 경제 발전에만 쓰였다는 과학기술계의 지적이 있었다”며 개헌 배경을 설명했다.
야권은 과학기술계의 총론이 모이면 검토할 방침이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과학기술계의 요구 사항이 정리되면 당 차원에서 세부 개헌안을 마련할 때 참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제기된 과학기술 개헌안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127조 1항 수정 △전문, 총강, 기본권, 경제 조항에 과학기술 삽입 △127조 1항 삭제 및 총강에 과학기술 조항 신설 등이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헌법 127조 1항 문구를 수정하자는 입장이다. '국민경제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를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과학기술의 발전과 조화되는 사회를 추구한다'로의 변경이다.
신 의원은 “과학기술이 경제 발전 수단이던 시기는 지났다”면서 “경제 발전을 포함해 인간과 과학기술 조화를 통한 과학기술 혜택을 국민이 공평하게 누리는 사회가 헌법이 추구할 과학기술 가치”라고 강조했다. 신 의원은 오는 23일 국회에서 한국헌법학회와 '과학기술 헌법 개정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한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헌법 전문, 총강, 기본권, 경제 조항에 모두 과학기술을 삽입할 것을 제안했다. 헌법 전문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뒤에 과학기술을 넣는다. '국가는 미래 사회에 대비하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기 위하여 과학기술 혁신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한다. 기존 127조 1항은 '국가는 인력 양성과 생태계 조성을 통하여 연구개발과 성과확산을 촉진하고, 국민이 그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고르게 누리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로 수정한다.
김명자 과총 회장은 “국민의 삶의 질, 안전, 안보 등 국가 사회 현안에서 과학기술을 제외하고는 논의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인데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는 헌법에 그 개념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결함”이라면서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 도구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원천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27조 1항을 삭제하고 총강에 과학기술 내용을 넣자는 주장도 있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제1장 총강에 '국가는 학술 활동과 기초 연구를 장려할 의무가 있다'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이들 모두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가치를 담자는 총론의 취지는 같지만 각론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폭넓은 논의를 거쳐 과학기술 위상을 재정립하는 최상의 안 도출이 과제다.
안영국 정치 기자 ang@etnews.com,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