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지역에 위치한 레미콘 업체 D사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중소벤처기업부와의 법률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7월 D사는 중기간 경쟁시장에 입찰참가 자격을 제한한 중기부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1심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법률 분쟁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중기부는 1심 패소 이후 2심 법원에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지난 2월 말에는 대법원에 상고하며 법률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중기부로부터 같은 행정 조치를 받은 S사 역시 마찬가지로 법률 분쟁 중이다. S사 역시 D사와 마찬가지로 1심 승소에도 중기부의 항소에 현재 대법원 재판을 앞두고 있다.
소송은 공정거래위원회 결정이 발단이 됐다. 공정위는 앞서 발주자에게 공동으로 레미콘 공급을 거절한 레미콘 제조사에게 시정명령을 내렸다. 중기부는 공정위의 결정에 따라 이들 기업이 중기간 경쟁품목에 입찰하지 못하도록 참가자격을 제한했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매출 대부분이 공공기관 중심 관급공사로 이뤄지는 지방 레미콘 업체 특성 상 입찰 담합이 있었다고 참여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은 사실상 문을 닫으라는 의미”라며 “불공정 관행을 막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이미 1심 판결에서 패소했음에도 항소에 나서는 정부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법원이 정부의 행정 절차가 옳았다는 판결을 내리는 경우에도 지루한 법률 분쟁이 이어진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2016년 아파트 공사 핵심자재인 고강도 콘크리트(PHC) 업체에 공공 구매입찰 담합을 적발했다. 이에 따라 중기부와 조달청은 이들 업체에 입찰자격참여 제한 조치를 취했다. 올초 M사는 1심 패소 이후 서울고법에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7일에는 대법원 항고에 나섰다.
문제는 이처럼 행정 소송이 이뤄지는 동안 법을 어긴 업체에 대한 행정 조치가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점이다. 이 회사는 1심 소송이 진행되는 1년여 기간 동안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했다. 1심 소송 제기와 함께 법원에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됐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중기부의 입찰자격참여 제한에 따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을 수임하는 일이 쏠쏠한 수입원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중기간 경쟁시장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은 대부분 공공물량이 아니면 계속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 공공시장 진입을 금지할 경우 소송 기간 동안 발생할 피해로 인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며 “현행 판로지원법과 부대 조항이 사적 계약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해치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 기업에게 유리한 지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감사원 지적에 따라 직접생산확인 증명이 대거 취소된 엘리베이터 업체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여전히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2015년 위장 중소기업으로 적발된 H사도 2년이 넘는 법적 분쟁 끝에 소송을 취하했다. H사 역시 이 기간 동안 집행정지 가처분을 받아 공공조달 시장 납품 시도를 계속했다.
중기부에서도 사법부의 집행정지 가처분 인용 결정에는 즉시 항소를 꺼리며 본안 소송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의 행정 조치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셈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행정조치에 충실히 나서고 있지만 개별 기업의 소송에 모두 대응하기는 어렵다”며 제도 개선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정원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공공조달계약 제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규제와 처벌 위주의 정책보다는 환경과 구조 요인을 철저하게 분석해 제도와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부실과 비리는 엄연히 구분돼야 하고 부실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공공조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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