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퀄컴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퀄컴을 인수하겠다는 싱가포르 브로드컴의 제안을 거부하는 내용의 금지 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로드컴이 퀄컴을 차지하면 미국 국가 안보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지난해 11월부터 산업계를 뜨겁게 달군 1170억달러(약 125조원)에 이르는 '반도체 빅딜'은 무산됐다. 미국을 되돌리기 위해 본사까지 옮길 의사를 내비친 브로드컴의 막판 총력전도 무위로 막을 내렸다.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무산이 주는 시사점은 두 가지다. 먼저 보호무역 전쟁이 첨단 산업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은 이미 차세대 기술을 넘어 국방과 안보 영역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미국이 5G 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이면서 하이테크 분야가 철강에 이은 통상전쟁의 새 무대가 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당장 중국 정부가 퀄컴이 추진하고 있는 NXP 인수를 승인할 지 여부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다.
또 하나는 화웨이 경계령이다.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들었지만 사실 화웨이를 겨냥한 포석이 크다. 5G 기술에서 퀄컴이 약해지면 반대로 화웨이 입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10년 안에 무선통신 시장을 제패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화웨이는 2009년 5G에 6억달러 투자를 시작으로 올해에도 8억달러 추가 투자를 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BT, 도이체텔레콤, 보다폰 등 주요 유럽 통신사와는 5G 설비를 시험하고 있다. 5G 필수 특허 1450개 가운데 화웨이와 ZTE 비중은 10%에 이른다. 퀄컴과 노키아에 이어 3위다. 2011년 당시 4G 특허에서 퀄컴이 21%, 화웨이와 ZTE가 불과 7%인 점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문제는 우리다. 새로운 통상전쟁에 대비책은 있는지, 5G 시장에서 화웨이의 공세를 어떻게 막을지 따져 봐야 한다. 준비만이 새로운 보호무역의 망망대해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