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本業)이 무엇일까. 그를 인터뷰하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변호사, 변리사, 연구소 대표, 교수 등 1인 다역(多役)을 해서다. 임영익 인텔리콘 대표를 8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논현로 인텔리콘 사무실에서 만났다. 국내 법률 인공지능(AI) 시스템 분야에 새로운 이정표(里程標)를 제시한 변호사다. 낮에는 변호사로, 밤에는 연구자로 일하며 국내 최초로 법률 AI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AI 시스템은 국제 법률 AI 경진대회에서 2016년과 2017년 연속 1위를 차지해 세계에 기술력을 자랑했다. 지난 2월에는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대륙아주와 협약을 맺고 시스템을 국내 처음 공급했다. AI와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개발한 법률 AI 시스템 성능과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2시간여 들었다.
-개발한 법률 AI 시스템이 국내 최초인가.
▲그렇다. 국내 최초로 법률 AI 시스템을 개발한 게 맞다. 대형 로펌에 시스템을 공급한 것도 국내 처음이다.
-언제부터 연구를 했나.
▲2010년부터다. 처음에는 이론 정립과 기획을 했다. 실제 시스템 개발에 착수한 것은 2013년부터다. 5년여 만에 법률 AI 시스템을 개발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 AI 시스템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이때 AI 가능성을 알았다.(인텔리콘이 개발한 시스템은 법률 AI 분야 세계 최고 학술대회인 ICAIL(International Conference o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Law)이 주관한 세계 법률 인공지능 경진대회(COLIEE)에서 2017년 우승한 바 있다. 법률 AI 기술력을 세계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그동안 개발한 법률 시스템은 어떤 게 있나.
▲법률 AI 시스템은 크게 4종류가 있다. 하나는 지능형 검색 기능을 하는 시스템이다. 자체 개발한 유렉스가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질문에 답하는 '법률 Q&A(question and answer)' 머신 기술이다. 세 번째는 응용 시스템이다.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자료를 검토하는 기능을 한다. 네 번째는 소송 예측머신이다. 우리가 개발한 시스템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검색 기능 AI 시스템인 유렉스다. 다른 하나는 Q&A 머신이다. 짧은 질문에 짧게 대답한다.
-유렉스 성능은.
▲이 시스템은 자연어 처리기반 검색엔진이다. 법률과 판례를 동시에 찾아 준다.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계속 성능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업무협약을 체결한 법무법인 대륙아주와 협력해 시스템을 최적화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유렉스는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차세대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돼 인증서를 받았다.(차세대 세계일류 상품은 앞으로 7년 이내 세계시장 점유율 5위 이내 진입 가능하다고 인정받은 상품이다.)
-업무 만족도는.
▲만족도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연구소에서 6개월간 베타서비스를 하면서 성능평가 작업 중이다. 법률 서비스 원칙은 사용이 불편해도 오류가 있으면 안 된다. 한 치의 오류 없이 정확도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난해 가을부터 끊임없이 성능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시스템을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AI 시스템의 기술 미비점을 보완할 수 있다. 올 들어 인공지능망 학습으로 검색 시스템을 질적으로 한 단계 발전시켰다.
-법률 AI 시스템 장·단점은 무엇인가.
▲장점이라면 크게 3가지다. 업무를 신속, 정확하게 처리해 효율성을 높여 준다. 변호사들의 업무처리 시간과 노력을 획기적으로 줄여 준다. 단점이라면 새로운 기술 등장에 따라 기존 기술에 익숙해 있던 이들이 이용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AI와 인간 사고 차이점은.
▲오해 하는 분들이 있던데 AI 시스템은 업무 보조 툴이다. AI 시스템이 변호사 업무를 대신해 일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걱정하는 데 그건 오해다. 인간 사고와 AI는 근본부터 다르다. AI는 단순한 논리 연산이나 이미지 인식처리, 데이터 처리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번에 개발한 AI 시스템도 시각 지능과 언어 지능만 있다. 인간 흉내를 내는 것이다. AI는 이미지 인식은 인간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언어 지능은 훨씬 낮다. 인간 감정이나 느낌은 기계가 인식할 수 없다. 이건 대체가 불가능하다. 지금 단계에서 AI 시스템은 변호사 업무 보조 수단이다. 변호사를 대체할 AI에 관해 지금 단계에서 언급하기는 어렵다. 먼 나중의 일이다.
-AI 법률 분야는 어느 나라가 선진국인가.
▲원천기술이 앞선 나라는 미국이다. 딥 러닝은 캐나다가 선진국이다. 법률 AI는 미국과 유럽이 거의 동시에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가 이론에서 선진국이다. AI라는 용어는 1956년 미국에서 열린 다트머스회의에서 존 매카시가 처음 사용했다. 이듬해 프랑스에서 한 법률가가 법률 AI 논문을 처음 발표했다. 추론 형식으로 법률 형식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 검색 시스템과 Q&A 시스템으로 결론날 것이라고 했다. 이 분야는 미국과 캐나다, 네덜란드, 일본, 이탈리아 5파전이다.
-미국이 선두인 이유는.
▲산업화에 앞선 게 이유다. 네덜란드나 이탈리아는 이론적으로는 깊이 연구했지만 산업화 기반이 취약했다. 미국은 스탠퍼드대학 로스쿨에서 법률AI 연구를 많이 한다. 이론을 산업과 연계한 것은 미국이 단연 앞섰고 세계 선두다. 이론이 앞서도 산업화를 못하면 시장에서는 소용이 없다.
-미국과 한국 기술 수준은.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미국은 영미법이고 우리는 대륙법 체계다. 두 나라 법 체계가 다르다. 미국과 달리 우리는 법률 자체 검색과 분석에 집중한다. 그래서 직접 비교는 어렵다.
-국내 리걸테크 기업은 얼마나 되나.
▲한국은 아직 초기단계다. 그동안 인텔리콘이 유일했지만 최근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은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리걸테크(Legaltech) 업체를 1500에서 2000여개로 추산한다. 순수 연구업체만 100여개에 달한다. 한국은 리걸테크 업체가 10여개에 불과하다. 우리는 일본에 비해서도 3~4년 뒤처졌다.
-AI 시스템 적용 분야는 어디인가.
▲법률 영역별로 적용 분야를 계속 확대할 수 있다. 법률문서 분석기와 소송예측 같은 응용분야다.
-세계 AI 법률 분야 시장 규모는 얼마로 추산하나.
▲현대경제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리걸테크 산업 자료에 따르면 2019년에는 6조5000억원, 2020년이면 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시장도 매년 급성장할 것으로 본다.
-AI 법률시장 발전과 관련해 개선해야 할 법·제도는.
▲공공 데이터 공개 문제다. 대법원에서 하급심판례만 극히 일부만 공개한다. 리걸테크는 법률 생태계를 바꾸는 일이다. 공공 데이터를 공개하는 문제를 시민과 변호사들이 논의해야 한다. 미국은 데이터를 공개하는데 제한이 없다. 미국 사례를 참고해 리걸테크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법을 개선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롭게 공공 데이터 일괄 공개 여부를 논의할 시기다.
-생각을 잘하기 위한 기술이 있나.
▲생각 기술에 관한 이론서들이 많이 나와 있다. 나는 살아있는 바둑계 전설인 조훈현 국수(현 자유한국당 비례대표)가 한 “창의적 생각 기법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많은 지식을 공부해서 끈질기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개인적으로 스스로 어떤 문제를 끈질기게 풀어보길 권한다. 이어 자신의 생각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또 메모를 많이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생각 용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메모는 외부 저장장치다. 메모를 하면 생각을 뇌에 저장할 필요가 없어 늘 생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생각을 잘 할 수 있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없다. 처음에는 좌우명이 있었지만 자꾸 바뀌는 바람에 지금은 “좋은 사람, 훌륭한 인재와 일하고 같이 있는 걸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 취미는 영화와 그림 감상이다.
임영익 인텔리콘 대표는 서울대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면서 물리학, 전자공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AI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잠시 뇌 과학을 공부했다. 귀국해 2009년 5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12년 사법연수원 41기, 특허연수원을 9기로 수료했다. 현재 인텔리콘 대표와 인텔리콘 메타 연구소 대표다. 세계법률인공지능학회 정회원, 대학 강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지난해 법률 AI 시스템이 차세데 세계일류 상품으로 선정됐고 굿 콘텐츠 서비스 인증을 획득했다. 저서로 '메타생각'이 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