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사건 처리 4000여건, 과징금 1조3300억원 부과 등 시장 파수꾼 역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여전히 공정위를 바라보는 국민과 시장의 시선은 따갑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 처리, 솜방망이 처벌 등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정위의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현행 공정거래 사건 집행 시스템에도 원인이 있다. 경쟁법과 관련한 집행 수단을 행정·형사·민사 수단으로 나누어 볼 때 현행 공정거래 사건 집행시스템은 행정 수단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공정위가 부과하는 시정명령과 과징금 같은 행정 조치가 주를 이루고, 형사 제재 수단은 보완재다. 그리고 사인의 금지청구제 같은 민사 구제 수단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미흡하다.
한마디로 경쟁법 집행은 공정위에 집중된다. 민원이 과도하게 집중되다 보니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신속한 피해 구제가 이뤄지지 못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공정위가 조사를 개시하지 않거나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경우 불만이 있더라도 마땅한 대체 수단도 없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독점하는 경쟁법 집행에 경쟁 원리를 도입한다는 목표 아래 집행 수단을 민사·행정·형사 등으로 다양화하고, 집행 권한을 지방자치단체·검찰·법원 등으로 분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첫 시작이 '공정거래 법 집행체계 개선 TF'(이하 TF)다. TF에서는 법 집행체계 혁신을 위해 필요한 11개 과제를 집중 논의, 지난 2월 22일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11개 과제는 사인의 금지청구제, 집단소송제 등 민사 구제 수단 5개 과제, 지자체와의 협업 방안 등 행정 규율 수단 4개 과제, 전속고발제 개편 등 형사 규율 수단 2개 과제다.
TF에서는 민사 구제 수단 확충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우선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불공정 행위로 손해를 본 피해자가 공정위의 판단을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불공정 행위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 소비자 분야 집단소송 도입 방안 의견도 모아졌다. 소액·다수 피해자가 적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 증거 확보를 돕기 위해 법원의 자료 제출 요구 시 기업에 자료 제출 의무화를 부여하는 방안 의견도 일치했다.
TF에서는 공정위의 집행력을 보완할 수 있는 행정 수단 확충 방안도 논의했다. 공정위 조사 인력만으로는 중소 상공인의 불공정 거래 피해를 막기에 한계가 있다. 세부로는 행정 수요가 많은 가맹 분야부터 지자체와 조사권을 분담하는 방안 추진에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현재 과징금 수준이 법 위반 재발 방지에 충분치 않다는 것에 위원들이 공감했다.
TF에서는 우리 현실에 맞는 형사 규율 수단을 모색하기 위해 전속고발제 개편 방안도 검토했다. 전속고발제가 존재하는 6개 법률 가운데 대체로 쟁점이 적은 공정거래법 외 5개 법률에서의 존폐 여부를 우선 논의했다. 이 가운데 이른바 유통 3법인 가맹거래법, 대규모유통업법(배타성 거래 강요 행위 제외), 대리점법상 전속고발제는 폐지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공정거래법상 전속고발제 개편 방안은 전면 폐지, 선별 폐지, 현행 유지 후 보완 등으로 의견이 나뉘면서 결론을 명확히 내리지 못했다.
이 밖에도 TF에서는 공정거래 관련 법 위반 행위로 손해를 본 피해자의 신속한 구제를 위해 징벌성 손해배상제도 확대, 분쟁 조정 대상 확대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사·사건처리 과정의 투명성,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절차 개선 방안도 논의됐다. 또 TF 위원은 형사 제재 효과를 위해 검찰과 협업을 강화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이 같은 TF 논의는 공정거래 법 집행체계 혁신을 위한 첫걸음이다. 실제 실행까지는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한다. 우선 공정위는 TF 논의 결과를 토대로 법 집행체계 개선과 관련한 입장을 조속히 정리하고 후속 조치를 이어 갈 계획이다.
공정위 행정력만으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이른 시일 내 추진한다. 국회에 계류된 법안은 심의 과정에서 TF 논의 결과와 입장을 충실히 설명할 예정이다. 앞으로 진행될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에도 내용을 반영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공정거래법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고 불공정 거래 행위로부터 피해 구제 효과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될 것으로 기대한다.
채규하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 ghchai47@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