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외계 생명체을 묘사할 때 문어는 섭외 1순위다. 문어 모습을 본 딴 외계 생명체는 영화 인디펜던스데이(1996년), 우주전쟁(2005년), 컨택트(2016년) 등에 등장한다. 다리 갯수나 머리 모양 등 생김새 차이는 있지만 원류는 문어에서 비롯됐다고 쉽게 짐작 가능하다. 꿈틀거리는 다리(발)에 커다란 머리, 끈적거리는 피부가 외계 생명체 트레이드 마크처럼 자리잡고 있어, 이쯤 되면 문어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가 의심케 할 정도다.
문어형 외계 생명체가 첫 등장한 건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의 원작이자 동명 SF 소설이다. 1898년 영국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즈가 지은 '우주전쟁'은 여러 편의 영화 뿐만 아니라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돼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소설 속 외계 생명체는 화성에서 왔다. 다리 3개와 팔과 같은 기능을 하는 촉수가 달린 거대한 전투 로봇(트라이포트)을 타고 열 광선을 쏘아대며 지구를 침공한다. 트라이포트 크기와 지금껏 보지 못한 기술로 공세를 펼쳐 인류를 공포에 빠트린다. 하지만 트라이포트 속에 있는 건 지구 환경에 취약한 못생긴 문어형 화성인일 뿐이었다. 브라질 아티스트 엔리케 알빔 코레아가 그린 초기 소설 일러스트를 참고하면 정말 문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에겐 친숙한 '식재료'인 문어가 왜 인류를 위협하는 외계 생명체로 재탄생했을까. 문어에 대한 혐오와 공포는 역사가 길다. 구약성서 레위기 11장에는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니라(중략) 수중생물에 지느러미가 비늘 없는 것은 너희가 혐오할 것이니라”라고 기록돼있다. 또, 그 고기를 먹지말라고 경고했다. 연체 동물인 문어는 당연히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다. 이런 모습 때문에 앵글로색슨계 사람은 문어를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로 부르며 기피한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속 괴물 '크라켄'은 거대 문어 모습으로 묘사된다.
문어가 가진 이미지를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 생명체에 덧씌우면, 쉽게 혐오와 공포를 환유시킬 수 있으니 이만큼 적절한 소재도 찾기 힘들다. 하지만 문어의 기원이 실제 외계라는 주장도 있어 과학계가 시끄럽다. 이른바 범종설 학자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외계에서 날아온 운석에 문어의 기원이 되는 배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배아 속 DNA와 지구에 있던 특정 DNA가 만나면서 문어를 포함한 두족류가 탄생 됐다는 것이다. 문어가 2억7000만년 전 갑자기 출현했다는 점과 문어 특질을 만들 수 있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추적되지 않는다는 게 논거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가 이런 범종설에 대한 근거가 빈약하고, 가설 증명이 어렵다는 점에서 반박하고 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