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20>공감 혁신

“밤이 이르자 집안사람 수십명을 모아 적진을 둘러막고 불을 놓았다. 적병은 타 죽거나 뛰쳐나오면 나오는 족족 죽였고, 조총과 창칼을 모아 군졸들에게 나누어 줬다.”

이 '잠와실기(潛窩實記)' 구절의 주인공은 정무공 최진립이다. 그 집안 기제에는 특별한 절차가 있다. 최진립의 제사가 끝나면 제사상을 마루로 옮겨서 또 한 번 제사를 치른다. 실상 최진립은 병자호란이 나자 69세 나이로 참전했다가 용인 험천에서 전사한다. 종 옥동과 기별은 임란과 호란 양란 때 최진립을 끝까지 따랐다. 두 번째 제사는 이들 두 종을 위한 것이다. “주변에선 종을 제사지낸다고 말이 많지만 우린 세 분이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다름 아니라 유명한 경주 교동 최부자집 얘기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혁신 리더의 조건은 무엇일까.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에드 바티스타에게는 일상이 된 질문이다. 많은 최고경영자들은 슈퍼맨을 상상한다. 남다른 경험, 소신, 결단, 지혜가 있는 초인 존재다.

바티스타가 생각하는 덕목은 실상 조금 다르다. 그의 답은 공감하라는 것이다.

바티스타는 유명한 여성 사회복지학자 브린 브라운의 얘기로 공감을 설명한다. 브라운은 창피함이라는 감정을 먼저 생각해 보자고 한다. 그는 창피함이란 자기 자신에게 결함이 있어서 사랑받지 못하고 어떤 집단에도 소속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강렬한 고통이라면서 공감이 이 창피함이란 감정에 해독제가 된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가 매일 만나는 고객으로 눈을 돌려 보자.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응답도 해답도 없다면 당혹스럽기 마련이다. 문제가 심각할수록 수치심은 커진다. 종종 가격을 치르지 못할 때 창피함도 느끼게 된다. 고객의 이런 당혹감을 풀고 해결책을 찾으려면 공감이 필수다.

그러나 이런 공감이란 흔치 않다. 소비자는 여러 이유로 무시된다. 가격을 지불할 수 없다면 가장 분명한 제외 이유가 된다. 높은 성능에는 기꺼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라고 말한다. 고객의 필요라는 것은 잊은 지 오래다. 심지어 다른 고객과 격이 맞지 않다는 것도 핑계가 된다.

누군가 물었다. 타타자동차 나노는 어떤 범주의 제품인가요. 인도 중산층 소득에 맞춘 틈새 제품일까, 아이디어 빛나는 검박형 혁신 제품일까. 그도 아니면 2500달러짜리 싸구려 차로 치부해야 하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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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다름 아닌 공감 제품이란 것이다. 소비자가 필요한 것에 대한 창의 대답이었고, 그 과정에 검박함을 지향하는 혁신이 함께 있었다.

험천 전투의 결말이 자명해지자 최진립은 환갑 넘긴 두 종에게 도망가서 목숨을 보전하라고 한다. 두 노비는 '주위충신불위충노호(主爲忠臣不爲忠奴乎)'라 답한다. '주인이 충신인데 내가 어찌 충직한 종이 되지 못하리오'라는 말이다.

공감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타타 나노와 최부자집 제사에서 찾은 공통점은 하나 있다. 바로 상식의 범주를 넘어선 무언가를 가능하게 하는 것. 결국 공감과 혁신은 같은 곳을 지향하는 셈이다.

당신이 진정 세상을 바꾸는 혁신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공감이란 것을 기억해 두자. 공감과 혁신은 서로 닿아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