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난제를 놓고 싱가포르에서 만났다. 한때 핵전쟁을 불사하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던 양국 정상은 70년 냉전 역사를 마무리하는 '공상과학영화' 같은 하루를 보냈다.
'평화와 고요'를 의미하는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 1953년 이후 65년 간 이어온 한반도 정전의 마침표가 찍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오전 9시 숙소인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먼저 출발하면서 역사적 하루가 시작됐다. 몇 분 뒤에 김정은 위원장이 숙소인 세인트리지스호텔을 나섰다.
10시를 조금 넘은 시간 두 정상이 카펠라호텔 레드카펫에 동시에 나타났다. 복도 양 끝에서 걸어온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성조기와 인공기가 함께 걸린 배경 앞에서 약 12초간 악수를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담 모두 발언에서 “오늘 회담이 엄청나게 성공할 것”이라며 “회담이 열리게 돼 무한한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 “좋은 대화가 있을 것”이라며 “북한과 매우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나란히 앉은 김 위원장은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 아니었다”면서 입을 열었다. 이어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렸지만,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과거 김정일 체제부터 이어온 '벼랑 끝 전술'과 극단적 외교관계를 종식시키겠다는 파격 발언이었다.
김 위원장은 단독회담이 끝나고 확대회담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많은 이들이 이번 회담을 일종의 판타지나 공상과학영화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처음 만난 두 정상의 단독회담은 예정된 시각보다 짧은 38분만에 마무리됐다. 보좌진이 참여하는 확대회담으로 바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마주 앉았고, 각자 양 옆으로 실무진들이 배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확대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김정은과 협력해 큰 문제, 큰 딜레마를 해결할 것”이라며 말했다. 김 위원장은 “도전 과제가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약 140분간 진행된 확대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 옆에는 백악관에서 공지한대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 옆에는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트파트격인 김영철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리용호 외무상이 자리했다.
이어진 업무오찬에서는 미국과 북한, 싱가포르 현지 요리가 어우러져 눈길을 끌었다. 아보카도 샐러드를 곁들인 새우 칵테일, 오이선, 그린망고 케라부 등을 메뉴로 올려 국가 간 화해와 교류의 장임을 담았다는 평가다. 회담 전부터 주목받은 '햄버거 오찬'은 실현되지 않았다.
두 정상은 오찬 이후 호텔 앞 산책로에서 잠시 기자들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많은 진전이 이뤄졌다. 정말로 아주 긍정적”이라며 “정말 환상적 회담”이라고 밝혔다
두 정상은 이후 기자회견장에 함께 등장해 공동합의문에 서명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 내용이 포괄적으로 담긴 합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에 서명하며 “북한과 좋은 관계를 구축했다”면서 “과거의 그 누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오늘 역사적인 이 만남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서명을 하게 됐다”면서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양국 정상은 공동합의문 서명 이후 이날 오전 첫 대면한 호텔 레드카펫으로 장소를 옮겨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다소 긴장한 분위기의 첫 악수와 달리 미소와 함께 오랫동안 서로의 손을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백악관에 초청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해 “대단히 재능이 많은 사람임을 알게 됐다”면서 특별한 유대관계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양 정상은 다시 한 번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