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애플이 7년간 지속한 특허 침해 소송에 전격 합의한 배경이 관심이다. 양사 소송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양대산맥 삼성전자와 애플은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 한 치 양보 없는 소송을 지속했다.
양사가 소송 중단에 합의한 요인으로 △시장 상황 변화 △비용 부담 △이미지 훼손 △다른 특허 분쟁 △CEO 교체 등이 손꼽힌다.
◇7년 동안 확 달라진 시장 상황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애플은 2011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각각 19.9%, 19%를 차지했다. 점유율이 1%포인트도 차이나지 않았다. 당시 화웨이 점유율은 3.4%에 불과했고 샤오미·오포는 글로벌 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
애플은 2007년 가장 먼저 스마트폰(아이폰)을 선보였지만 삼성전자에 1위 자리를 빼앗겨 자존심을 구겼다. 갤럭시 스마트폰 흠집내기 전략이 필요했던 시기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애플이 2011년 삼성전자에 디자인 특허 소송을 제기한 결정적 이유다. 삼성전자도 애플이 원하는 조건으로 패소할 경우 심각한 명예 실추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 소송에 대응했다.
하지만 2018년 1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 상황은 2011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각각 22.6%, 15.1% 점유율을 차지하며 라이벌 구도를 확립하고 있지만 화웨이·샤오미·오포·비보 등 중국 제조사 점유율이 삼성전자와 애플 시장점유율 합을 상회할 만큼 급성장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서로를 견제하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삼성전자와 애플 모두 중국 제조사 추격을 선제적으로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1년과 현재 소비자가 느끼는 스마트폰 디자인 가치는 상이하다. 당시 터치형 네모 스마트폰이 참신하고 신선하게 느껴졌을 수 있지만 현재는 새롭지 않다. 폴더블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과거에 얽매인 소송은 불필요하다는 판단이 양사 합의의 중요 변수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마이클캐리어 럿거스 로스쿨 교수는 “애플과 삼성전자가 소송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이상적인 방법이 아니었다”면서 “수년간 지속된 소송에서 양사가 대체 무엇을 얻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막대한 비용 부담만 커져
법조계에서는 막대한 비용 지출에 따른 손실이 소송을 중단시킨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경쟁하는 관계지만,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 관계로서도 밀접하기 때문에 이 같은 점을 고려, 비즈니스적인 차원에서 합의를 도출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유철현 변리사는 “통상 지적재산권(IP) 소송은 법률대리인 대금을 시간 단위로 지급하는데 이번 사건은 개인이 맡은 것도 아니고 수십명 팀 단위로 움직이다 보니 7년간 막대한 소송비용이 집행됐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소송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불어나는 비용까지 지출하면서까지 소송을 끌고 가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법률대리인 입장에서도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장기 소송전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경우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애플이 전면에 나서 합의를 했을 가능성보다는 법률대리인끼리 사전 조율하고 양사가 최종 컨펌하는 방식으로 전개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였다.
박휘영 변호사는 “삼성전자와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경쟁하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사업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협력자”라며 “소송 과정에서 비즈니스에 대한 입장이 오갔을 것이고 이는 결국 합의를 타결하는 중요 변수가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외신은 양사가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봤다. 줄다리기 소송이 이어지면서 애플은 과도한 이익에 집중하는 기업으로 삼성전자는 카피캣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득될 게 없었다는 것이다.
폴 버그호프 특허 전문 변호사는 “양사는 이제 다른 문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고 소송이 종료된 것을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문 예상 내용은
삼성전자와 애플은 디자인 특허 소송을 중단키로 합의하면서 별도의 '합의문'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합의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전문가는 합의문에 △서로 요구하는 조건을 수용하는 개별 계약 내용 △소송 과정에서 노출된 지적재산권 비밀 유지 △동일 건에 대한 추가 소송 제기 시 패널티 부과에 대한 내용 등이 담겼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 변호사는 “7년 동안 소송을 진행하면서 누가 어느 정도 잘못을 했고 최소 얼마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점은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판사 판결에 따라 배상금을 지급하게 될 경우 이미지는 물론 주가 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원한만 조건에서 해결하기 위한 요구조건과 이행 약속을 합의문에 담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송이 오랜 기간 지속되다 보니 기업 비밀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가 파악한 상대 기밀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활용하지 않겠다는 합의 내용도 포함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