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월트디즈니에 위기가 찾아온다. 기업사냥꾼에게 회사를 넘겨야 할 상황까지 몰렸다. 적대적 인수합병 뒤에는 그동안 쌓아 온 자산이 조각조각 팔려갈 게 뻔했다. 목록에는 미키마우스·피노키오·밤비 같은 캐릭터부터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신데렐라' 같은 만화영화, 디즈니랜드라 불리는 테마공원도 있었다.
토드 젠거 미국 워싱턴대 올린경영대학원 교수는 의문이 생겼다. 월터 디즈니가 비범한 창업자이긴 했지만 이 유명한 기업의 위기는 너무 빨리 다가왔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문제는 디즈니답지 않은 운영이었다. 비전이 흐릿해지자 가장 먼저 애니메이션이 침체된다. 1978년에서 1984년 사이 '여우와 사냥개' 단 한 편밖에 제작되지 않는다. 당연히 박스오피스 실적이 떨어진다. 덩달아 캐릭터 라이선스 수입도 바닥이다. 때마침 '디즈니의 아름다운 세계'라는 TV 프로그램이 종영을 맞는다. 이러자 그동안 쌓아 올린 명성이 무너져 내린다.
위기 앞에서 디즈니 이사회는 마이클 아이스너를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한다. 아이스너는 월트디즈니의 '가치 만들기' 비법을 다시 꺼내든다. 핵심은 디즈니만의 캐릭터와 그들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었다. 1989년 인어공주, 1991년 미녀와 야수, 1992년 알라딘, 1994년 라이언킹, 1995년 포카혼타스, 1996년 토이스토리 1편을 쏟아냈다. 이것을 출판, 음악, TV, 매거진, 테마파크, 캐릭터 라이선싱으로 둘러쌌다. 1984년 19억달러이던 시총은 1994년 280억달러로 치솟는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젠거 교수는 디즈니, 애플, AT&T와 세계 최대 철강 기업 아르셀로미탈의 실패 및 재기를 보고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 기업에는 자신의 자산과 활동을 연결해 가치를 만드는 자신만의 '기업 이론'이 필요하다. 스티브 잡스의 귀환 후 5년도 지나지 않은 2001년 8월 애플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에 오를 수 있게 된 것도 어쩌면 잡스만의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젠거 교수가 찾은 공통점은 가치를 찾아내는 세 가지 안목이었다. 그 가운데 첫째는 포사이트(foresight)다. 산업의 진화와 고객 취향 변화를 예견하는 것이다. 디즈니에는 가족 만화영화였고, 잡스에게는 소니 워크맨 같은 개인용 컴퓨터였다. 둘째는 인사이트(insight)다. 전에 없던 가치를 찾아내는 통찰력이다. 디즈니에는 캐릭터였고, 잡스에게는 디자인이었다. 셋째는 크로스사이트(cross-sight)다. 가치와 가치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넓은 시야를 말한다.
어쩌면 기업 대부분은 공급망을 잘 관리해 만든 적시 생산과 저비용이면 적당할지 모른다. 어떤 기업은 고객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입고, 생산, 출고, 마케팅, 서비스를 혁신하고 있다. 젠거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가치를 만드는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라는 것이다.
이제 한 가지 해보자. 구글을 열어 'Walt Disney's Theory of Value Creation'(월트디즈니의 가치창조 이론)을 검색하자. 이미지를 찾으면 출력해 두라. 그다음 박스 안을 월트디즈니의 것 대신 내 것으로 채우고, 선들을 내 나름대로 다시 연결해 보자. 나만의 가치창조 이론도 이렇게 시작해 보면 어떨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