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패널사에 가 보세요. 국내 기업에서 핵심 공정을 담당하던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국가정보원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예요. 정말 기술 유출은 시간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만난 한 국내 장비 기업 임원의 말이다. 중국과 대만의 액정표시장치(LCD) 라인은 물론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 라인에 상당수 국내 인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중국 패널사가 설비 투자에 앞서 협력사와 기술 미팅을 할 때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회의를 진행할 정도라고 한다.
퇴사자가 회사와 전직 금지 약정을 맺더라도 실제 이를 지키는지 여부를 일일이 파악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욱이 협력사 직원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국내 기업을 퇴사한 뒤 대만 등지에서 1년여 동안 머물면서 외모를 탈바꿈하고 이름을 변경하는 등 이른바 '신분 세탁'을 거친 뒤 중국 경쟁사에 취업한다.
그러나 중국 경쟁사 취업 자체를 원망하기 전에 왜 이들이 중국으로 가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중견·중소기업이 대다수인 후방기업은 고객사인 대기업 입맛에 맞게 납품 단가를 낮춰야 한다. 생태계는 소수 핵심 협력사 위주여서 제품 테스트 기회조차 잡기 어렵다.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국내 정서도 한몫한다. 급성장하고 있는 현지 대기업에서 3배 이상 연봉으로 대우를 받는다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동안 국내 디스플레이·반도체 후방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기업이 매출 1조원대로 성장하면 선행 기술 연구개발 역량이 생기고, 경영 구조도 더 탄탄해질 수 있다. 수조원대 매출로 세계 첨단 기술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글로벌 후방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전략 차원의 인수합병 등으로 매출을 다변화시키고 급변하는 사업 환경에도 선행기술을 연구 개발할 역량을 갖추는 안정화 전략이 필요하다. 후방기업도 대기업 못지않은 규모로 성장하면 핵심 인력도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다. 굳이 중국으로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후방업계가 '1조 클럽'으로 가는 전략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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