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환급형(상속형) 즉시연금 사태 논란을 촉발했던 삼성생명이 미지급액 전액을 일괄구제하는 안을 부결했다. 삼성생명은 즉시연금 미지급액 중 일부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법적인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삼성생명은 26일 이사회를 열고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미지급액 지급 여부를 놓고 논의를 진행한 결과, 이사진 반대로 일괄구제안이 부결됐다.
현재 파악된 삼성생명 즉시연금 미지급액 규모는 5만5000여명, 4300억원이다. 생보사 전체 규모는 16만명, 8000억원이며, 일괄구제로 추가 파악하면 금액은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이 사안은 법적인 쟁점이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며 “법원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다만 삼성생명 이사회는 일괄구제안을 부결한 대신 소비자보호 차원에서 즉시연금 상품안내서에 예시된 최저보증이율에 미치지 못하는 연금 차액에 대해선 일괄지급하기로 했다.
또 향후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약관 개정, 보험금 지급, 민원처리 프로세스를 재점검하기로 했다.
논란이 된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한꺼번에 보험료를 내면 일정한 이율을 곱해 산출한 뒤 사업비, 위험보험료 등을 공제하고 매월 연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앞서 민원인 A씨는 상품 가입 시 기대했던 연금액이 나오지 않자 금감원에 이런 내용의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해 11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약관에 구체적으로 지급재원을 공제한다는 조항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삼성생명은 지난 1월 해당 약관을 수정하고 2월 A씨에게 과소 지급한 연금과 이자를 전액 지급했다.
삼성생명이 해당 결정을 수용하자 금감원은 모든 보험사에 동일한 유형의 다른 가입자에게도 미지급액을 일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업계는 분조위의 결정이 사업비와 위험보장료를 떼는 보험상품 특성을 간과했을 뿐 아니라, 민원 1건에 대한 결정을 16만명에 한꺼번에 적용하는 데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반발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일괄구제가 안될 경우 일일이 소송으로 가야 해 행정 낭비가 많고 시간이 지나면 구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일괄구제로 가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미지급액에 대해 일부만 일괄지급하고, 나머진 소송에 나서기로 하면서 논란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업계도 삼성생명의 결정이 지급 여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즉시연금 전체 미지급액의 절반에 달하는 삼성생명이 금감원 일괄구제에 사실상 반기를 든 상황”이라며 “특히 대형사를 중심으로 삼성생명과 같은 행동에 나설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
-
박윤호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