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 ICT 발전전략은 세계 최초 5세대(5G) 이동통신과 10기가(Gbps) 인터넷 등 초고속·초연결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다. 그러나 '콘텐츠(C)-플랫폼(P)-네트워크(N)-디바이스(D)' 생태계를 연결하는 전략을 수립하지 못한채 세계 최고 인프라는 글로벌 기업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초연결 인프라를 넘어 ICT 가치사슬을 유기적으로 성장시킬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
◇'초연결' 신화 가능할까
우리나라 ICT 발전전략은 유무선 초연결 인프라가 주도했다.
옛 정보통신부 주도로 1996년 세계 최초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 이동통신(CDMA)을 상용화한데 이어, 2000년대 초반 세계에서 가장 앞서 집집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초고속인터넷 시대를 열었다.
2012년 롱텀에벌루션(LTE) 상용화로 도서·산간 구석구석까지 안정적 전국망을 구축했다.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빠르게 이용하는 모바일 환경은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초연결 지능화 네트워크 전략으로 세계 최고 인프라를 이어간다는 목표다. 내년 3월 5세대(5G) 이동통신 세계 최초 상용화를 선언, 주파수경매, 기술기준 확정 등 제반 준비를 마쳤다. 하반기에는 10배 빠른 10기가인터넷을 세계 최초 상용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세계 최초' '초연결'이라는 구호 속에 불안이 감지된다.
네트워크 인프라를 바탕으로 가치를 창출할 콘텐츠, 플랫폼, 기기에 대한 발전 전략이 부족하다. 혁신 인프라 과실을 독보적 선도기술을 갖춘 실리콘밸리 기업 또는 압도적 가격경쟁력을 갖춘 중국에 내어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C-P-N-D 생태계 위기
위기는 C-P-N-D라는 ICT 가치사슬 전반에서 심화되고 있다. 우리 기업이 초연결 플랫폼이 제공하는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동안, 글로벌 기업 독식체제가 강화됐다.
동영상 콘텐츠 시장은 유튜브에 시장점유율 85%를 장악당할 때까지 사실상 손놓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동영상 서비스와 포털이 인터넷 실명제 등 규제 논란에 휩쌓이는 동안 구글은 외국계정 등 우회로를 마련하며 법망을 빠져 나갔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은 막대한 데이터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망사용료는 공짜 또는 국내기업 5분의 1에도 못미치는 가격에 이용했다.
글로벌 기업이 저렴한 인프라 비용을 이용하며 창출한 가치는 해외 조세회피처에 쌓여 가고 있다.
플랫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가입자 5000만명, 보급률 100%를 초과하는 매력도 높은 모바일 시장을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 내준지 오래다.
국내 콘텐츠 개발사가 앱을 판매해 얻은 수익 30%를 구글과 애플이 챙겨가는 구조다. 구글은 이마저도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앱 마켓을 배제하는 '갑질'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는 중이다.
그나마 세계 시장에서 선전하던 단말기도 위기감이 팽배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폰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시장점유율은 중국기업에 역전당할 위기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분기 세계 스마트폰시장 점유율 22.6%로 1위를 지켰다. 하지만 화웨이와 샤오미 오포는 각각 11.4%, 8.2%, 7%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삼성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네트워크마저 위기
네트워크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정부는 5G 세계 최초 구호를 외치면서 조기 상용화를 독려했다. 하지만 10조~15조원에 이르는 네트워크 투자 금액 상당 부분을 화웨이, 노키아, 에릭슨 등 글로벌 기업이 독식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소형 기지국이라도 국내 중소기업이 대응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지만, 뚜렷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인프라를 보유했지만, 경제 가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각종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ICT발전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0년간 1~2위를 다투고 있다. 국민 100명당 인터넷 이용률, 인프라 구축률 등 세계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네트워크가 산업과 국민생활에 미치는 경제효과 전반을 측정하는 세계경제포럼(WEF) '네트워크준비지수'에서 우리나라는 2016년 13위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초연결 인프라라는 저수지가 오히려 황소개구리의 놀이터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전문가는 우리나라 이제라도 구호에서 벗어나, C-P-N-D 생태계를 유기적으로 발전시킬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기업과 국내기업간 역차별을 해소할 규제 개혁 역시 핵심과제로 지목됐다.
김남 충북대 교수는 “5G 세계 최초 상용화가 의미를 가지려면, 걸맞는 산업 생태계를 아우르는 발전 전략을 치밀하게 고민해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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