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시장 큰 축인 모태펀드와 한국성장금융을 중심으로 민간 모펀드 결성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에 이어 은행까지 다양한 투자 재원이 유입된다. 한 때 출자기관 통합론까지 불거졌지만, 이제 경쟁구도를 만들며 벤처투자 시장을 키우고 있다.
29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성장금융은 다음달 중 사회투자펀드 운용사 선정을 위한 출자사업을 개시한다. 앞서 KB금융과 공동으로 사회투자 모펀드 출자를 합의한데 따른 후속 절차다. KB금융은 올해부터 5년간 매년 200억원씩 총 1000억원을 출자한다.
내년 초 결성되는 사회투자 자펀드는 어린이 교육환경 확충,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야에 우선 투입된다. 최종 결성 금액은 300억~400억원선이 될 전망이다.
민간 모펀드를 통한 사회투자는 국내에서 처음 있는 시도다.
KB금융 관계자는 “민간 최초 사회투자 모펀드 조성을 통해 금융의 사회적 가치 창출과 생산적 금융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KEB하나은행도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와 민간 모펀드 결성에 나서기로 했다. 총 1100억원을 출자해 총 3000억원의 재원을 조성한다. 1조원 규모 저금리 융자 상품도 병행한다.
모펀드가 자금을 출자하면 자펀드 운용사는 모펀드 출자금에 별도 민간 자금을 더해 시장에 투자한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주요 출자자로 자리잡은 모태펀드와 성장사다리펀드가 이런 형태로 운용된다. 모태펀드는 정부 예산, 성장사다리펀드는 금융권 출자금으로 조성됐다.
벤처투자시장에 투입되는 자금 대부분은 모태펀드와 성장사다리펀드에서 나온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규 결성 조합 가운데 모태펀드를 비롯한 정책기관의 출자금 비중은 22.7%에 이른다. 성장사다리펀드,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33.7%를 차지한다.
벤처투자업계는 KB금융과 하나은행의 민간 모펀드 출자 결정이 그간 정부와 국책은행 중심으로 돌아가던 벤처투자 시장에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한다. 임팩트펀드 전문 VC 등 특정 분야에 강점을 가진 운용사는 금융권이 앞장서 시장을 개척한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대기업의 추가 모펀드 출자도 기대할 만하다. 성장금융은 반도체펀드에 이어 추가 민간모펀드에 출자할 전략 투자자(SI) 유치에도 한창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출자한 반도체성장펀드는 지난해부터 이미 시장에 투입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500억원, 250억원을 출자해 모펀드를 설정했다.
조합 관계자는 “반도체 분야에만 집중 투자하는 펀드인 만큼 다른 펀드에 비해 다소 투자가 더딘 부분이 있지만 방향성이 명확한 만큼 유망 기업을 찾기에도 유리하다”며 “반도체펀드 뿐만 아니라 각 업종 대기업이 벤처투자를 통해 유망기업을 발굴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1차로 조성된 지유반도체성장투자조합은 273억원 규모 자펀드 가운데 6월 현재까지 총 85억원을 투자했다. 지난 2월 600억원 규모로 결성된 L&S글로벌 반도체성장펀드도 총 2개 기업에 40억원을 투자했다.
한국성장금융 관계자는 “은행 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에도 추가 출자 의사를 꾸준히 타진하는 단계”라며 “모펀드 단위의 대기업과 은행 등 민간 출자가 늘어날 수록 벤처투자 생태계도 탄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벤처투자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기능 중복 등을 이유로 모태펀드와 성장금융 통합론이 불거진 것과는 달리 모태펀드까지 민간 모펀드를 유치하며 본격적인 경쟁에 나섰다”며 “기능 중복은 점차 줄여가고 시장을 키우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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