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디지털세 부과를 추진한다. 고정사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세금을 피해 온 온라인 기업과 전통 소매업 간 공정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불붙고 있는 디지털세 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될 지 주목된다.
26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이 최근 디지털세 부과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우스다코타주가 온라인 쇼핑몰 웰페어를 상대로 낸 소송 결과다.
사우스다코타주는 온라인 사업자에게 매출 4.5%를 판매세(디지털세)로 내도록 했다. 대상은 연간 판매액이 10만달러를 넘거나 거래 횟수가 200건 이상인 업체다. 웰페어는 세금 납부를 거부했다. 사우스다코타주에 고정사업장이 없기 때문에 납세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연방대법원은 사우스다코타주 팔을 들어 줬다. 고정사업장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기존 세법 체계를 깨뜨린 것이다. 과세권을 고정사업장 소재 과세 관청에 부여한 1992년 대법원 결정을 26년 만에 뒤집은 판결이기도 하다.
다만 소급 적용은 하지 않기로 했다. 사우스다코타주는 온라인 쇼핑몰 오버스톡과 뉴에그 상대로도 고소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국 법무부 대변인은 “온라인 사업자는 덜 낸 세금만큼 물건을 싸게 판매, 오프라인 업체 이득을 뺏어 왔다”면서 “둘 사이 공정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결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환영 뜻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소비자와 소매업자가 일궈 낸 커다란 승리”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부터 오프라인 사업자 편을 들어왔다. 아마존을 두고 “세금 면제 혜택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비난을 가했다.
미국 전역으로 비슷한 형태 소송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EU)이 주도하던 디지털세 논의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한발 뒤로 물러서 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적극 가세할 가능성이 짙어졌다.
다만 변수는 남아 있다. 판결에 참가한 워싱턴 연방대법원 법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5대 4로 팽팽하게 갈렸다. 결과가 다시 뒤집힐 확률을 배제하긴 어렵다.
디지털세 반대 입장을 피력한 존 로버츠 주니어 대법원장은 “선례를 무시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지 않았다”면서 “경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만큼 의회 차원 검토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EU는 2020년 디지털 기업 대상 매출 3%를 세금으로 부과할 계획이다. EU와 미국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우리도 서둘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재광 법무법인 양재 회계사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살피느라 디지털세에 대한 전문가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글로벌 과세 형평 원칙에 부합하면서도 우리 기업 피해 최소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