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산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업계가 시장·인력·성장잠재력 등에 한계를 보이며 설자리를 잃는다. 글로벌 임상시험 확대와 주 52시간 근무제 등 외부요인까지 겹치면서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정부 지원과 대대적 산업 구조조정이 해결책이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외 환경변화와 정부 정책 부재 등으로 국산 CRO 기업 경쟁력이 저하된다. 외산 CRO 시장 잠식이 지속되면 신약개발 역량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CRO는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임상시험 설계, 대상자 모집, 분석, 결과 리포트 제공 등 임상시험 전반을 대행한다. CRO 역량에 따라 신약 개발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최근 국내에서도 신약개발이 활발한데다 제약·바이오 기업이 연구에만 집중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CRO에 맡긴다. 한국임상시험산업 정보 통계집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 CRO 규모는 3772억원으로 최근 3년 간 12.5% 성장세를 보인다.

국내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에도 국산 CRO업계 고민은 깊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개발단계부터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두면서 임상시험도 글로벌 CRO에 맡긴다. 실제 국내 CRO 산업에서 외산업체 점유율은 70%에 이른다. 2016년 기준 외산 CRO 매출은 전년대비 21.3%나 성장했지만, 국산 업계 매출은 0.4% 줄었다.
외산업계와 경쟁을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인력을 늘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국산 CRO 93.3%가 사업장 50~100인 사이 중소기업이다. 처우나 업무강도 등을 이유로 채용이 어렵다. 300인 이상 대형 CRO도 인력 고민이 깊다. 올해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매출에 직격탄을 받는다.
국산 CRO 업계 관계자는 “부서별 주 52시간 근무제 영향을 분석해 유연근무제 등을 대처한다”면서 “CRO 특성상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다 글로벌 의료기관과 협업을 위해 야근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매출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업계 한숨은 깊지만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없다. 신약강국을 기치로 내건 정부도 CRO산업은 관심이 없다. 정부가 CRO 영역을 지원하는 것은 △CRO 인증제 △인턴십 지원 △글로벌 신약 개발 참여 지원 등이 고작이다. 연간 투입하는 예산은 6억원이다.
규모도 작은데다 실효성도 떨어진다.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가 주관하는 CRO 인증제는 경쟁력 있는 CRO 기업을 선별해 수요자에게 검증된 정보 제공이 목적이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국산 CRO를 알리는 목적도 있다. 올해 15개 국산 CRO가 인증을 받았다. 홈페이지에 기업 정보 게시 외에 인센티브가 전혀 없어 실효성이 없다.
CRO업계 관계자는 “인증은 50인 이하 소규모 혹은 신생 CRO에게는 마케팅 수단으로 유용하겠지만, 기존 업체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면서 “정부 과제 참여시 가산점이나 기타 인센티브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기업도 받으니 우리도 받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지원 정책과 함께 산업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우리나라 전체 CRO 기업 45곳 중 국산 CRO는 26개를 차지한다. 이중 매출 100억원 이상은 2~3곳에 불과하다. 10억~50억원 사이 중소기업이 제한된 시장을 갖고 '제 살 깎아먹기식' 가격경쟁을 벌인다. 외산 CRO와 경쟁력이 갈수록 벌어지는데다 이미지 제고도 어렵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과 CRO산업을 함께 육성하는 정부 정책이 요구되며 국산 CRO 산업도 전반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서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해 영세성을 탈피하고 외산 업체와 경쟁에서 버틸 체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