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석의 新영업之道]<8>갑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틈을 주지 말자](https://img.etnews.com/photonews/1810/1118061_20181014134906_861_0001.jpg)
개인이 자신의 돈으로 자신을 위한 물건을 사거나 거래를 할 때 '을'로부터 뇌물을 받고 거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기 차를 사면서 자동차 영업직원으로부터 뇌물을 받는 사람은 없고, 자신의 집 가구를 사면서 돈 봉투를 받는 사람도 없다.
본인 지갑을 열어 자기 물건을 사는 '갑'은 금액이 크든 작든, 대상 제품이 무엇이든 항상 진지하고 언제나 합리적이다. 때론 충동구매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모든 구매자는 필요가 분명할 때 비로소 구매 행위에 들어간다. 왜 사야 하는지, 어떤 것을 사야 할지, 선택의 옵션은 있는지, 구매 계획을 짜고, 조건을 조목조목 꼼꼼히 분석한다. 의사 결정을 한 뒤에도 계약서에 서명할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기 위해 줄다리기를 한다. 이렇듯 구매의 주체가 개인인 경우 갑과 을은 끝까지 거래의 본질에 집중한다.
그런데 왜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을로부터 부적절한 접대를 받고, 금품을 불법으로 제공받아 언론의 조명을 받는 기업이나 공공기관 또는 단체의 갑질은 끊이지 않는가.
하물며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범죄 행위를 막아야 하는 경찰, 그것을 처벌하는 검찰, 그리고 평생 돈을 물 쓰듯 써도 남을 재벌 오너와 가족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오르내리는가.
본질은 무엇인가. 자기 돈이 아닌 것을 함부로 쓰고, 그 대가로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면 그것은 도둑질이다. 그러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범죄,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도둑놈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도 회사나 조직으로부터 업무 관련 권한을 위임 받아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다. 직장과 조직에서 이런 짓을 하는 사람도 집으로 돌아가면 한 가족의 구성원 또는 가장이다. 부모라면 자식들에게 항상 정직하고 바르게 살라고 가르칠 것이고, 자식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배우고 들어왔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종교를 가지고 있으니 모두 교회·성당·불당에서 고개를 숙여 사랑·정의의 말씀을 모시고, 봉사와 청렴을 외칠 것이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구매와 관련해 의사결정권이 있는 사람이라면 교육도 제대로 받았을 것이고 조직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이 분명할 텐데도 왜 이런 도둑질은 계속되고 있는 것인가.
회사, 조직의 돈이 자기 돈이 아니면 더 신중하고 정당하고 떳떳하게 써야 할 텐데 그와 정반대의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 영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당한 행위를 하는 을을 원인 제공자로 지목하고 힐난하지만 그들은 종범에 불과하다. 주범은 갑이고, 범죄의 원인 제공자도 갑이다. 갑이 공정하고 투명하고 바른 사람이라면 어떤 을이 갑에게 허튼 짓을 하겠는가. 갑에게 잘못된 접근 방식을 취하면 도리어 영업 기회가 없어진다면 어떤 을이 그런 시도를 하겠는가. 잘못된 을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겠지만 을은 꼬리이고 깃털에 불과하다.
이젠 바뀌어야 한다. 비정상 관행을 바로잡는 시발점을 갑으로 잡아야 한다. 부당한 접대를 아무렇지 않게 받는 담당자, 의도가 분명한 과도한 선물을 선의로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욕심을 챙기는 임원, 사사로운 관계와 공무를 구분 못하는 실무 책임자, 뇌물을 습관처럼 착복하는 의사결정자 등 다양한 직급과 여러 유형의 못된 갑이 지금도 곳곳에 있다. 이런 갑이 다른 사람의 비리와 부정엔 더 흥분하고, 목청 높여 사회 정의를 얘기한다.
답은 갑이다. 나쁜 갑이 비굴한 을을 만든다. 이상한 갑이 비정상 서비스업을 태동시켰고, 터무니없이 비싼 식당이 성업하도록 했고, 부정과 불의의 생태계를 만들어 왔다.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고가의 다양한 네트워크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골프장은 갑과 을의 화합의 장이 되고, 다양한 조합의 갑과 을을 흔하게 공항에서 볼 수 있는 것도 모두 고약한 갑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예약하고, 돈을 지불하고, 뒷정리는 을이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재화는 갑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즉 을로부터 받은 접대, 선물, 뇌물은 모두 갑의 회사와 기관이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행위는 범죄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기업은 청렴 선언을 하고, 윤리경영 지침을 수립해서 교육시키고, 관리 시스템을 강화했지만 이런 행태는 근절되지 않았다. 법만으로는 정의와 선이 실현될 수 없다. 결국 진실 되고 성숙한 갑과 을이 사회의 주류가 되고, 잘못을 용인하지 않을 때 잘못된 고리는 끊어질 수 있다. 을에게도 분명 책임이 크지만 이것을 끊는 주체는 갑이다.
선배가 하던 나쁜 짓을 관례라고 따르고,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면서 '이 정도쯤이야' 하고 스스로 정당화하는 것이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것임을 갑인 우리는 알아야 한다. 갑이 기본을 지키고 자존심을 지킨다면 을은 잘못을 저지를 수 없고, 도둑질의 빌미가 제공되지 않는다.
“비싼 음식 안 사도 되니 우리 직원 교육 더 시켜 주세요.”
“이런 접대 하지 말고 우리가 필요한 제품 추가로 제공하세요.”
“여유 있으면 추가 DC 하세요.”
“나와 함께 해외에 갈 시간 있으면 현안 해결에 시간을 써 주세요.”
이렇게 어두운 손을 뿌리치면서 차갑게 거절하는 갑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릴 수 있다.
이장석 한국영업혁신그룹(KSIG) 대표 js.aquina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