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0일 사회적 이슈였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활동을 마치고 건설 재개를 담은 권고안을 수립했다. 정부는 나흘 뒤 24일 국무회의에서 권고안을 정부 대책으로 확정하고, 탈원전과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를 골자로 한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발표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이 증가하는 등 나름 성과가 있었지만 에너지전환은 정책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에너지전환을 놓고 여야 간 공방이 한창이다. 최근 정부는 에너지 거버넌스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청와대는 사회수석실에 있던 에너지전환 태스크포스(TF)를 경제수석실 소관으로 옮겼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신임 장관 취임과 함께 에너지전환 무게 중심을 전원믹스가 아닌 전체 에너지원 간 균형과 관련 산업 생태계 조성으로 바꾼다는 의지를 시사했다. 에너지전환 로드맵 발표 1년 시점에서 2단계에 돌입한 에너지전환 거버넌스 성공 과제를 점검한다.
#1. 에너지 시장 개편
에너지 시장 개편은 2001년 전력시장 구조개편 추진 이후 아직까지 에너지 업계 난제로 남아있는 이슈다. 완전 자율경쟁 체제가 갖춰진 석유시장, 지역별 소매시장까지 개방된 가스시장과 달리 전력시장은 발전 부문만 개방된 매우 제한적인 구조다. 발전시장에는 민간기업이 참여할 수 있지만 판매시장은 한국전력이 독점기업이다. 도매와 소매시장이 분리돼 있다. 여기에 민간이 참여한 발전시장과 달리 한전은 공기업이다. 정부와 정치권 영향으로 상호가 가격이 연동되지 않는다.
시장 현실과 달리 정부 에너지전환의 미래는 민간 참여 활성화를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에너지효율과 수요관리 시장 등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이른바 '네가와트' 시장에서 민간 기업의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원가 반영 가격 시스템과 신산업의 단가 경쟁력이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에너지신산업이 기존 전력보다 가격경쟁력이 없다면 시장은 형성될 수 없다. 민간기업의 소매시장 개방 요구가 과거보다 줄어든 것도, 사실상 인상이 제한된 소매 전기요금 구조 탓에, 한전보다 저렴한 전력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7위 에너지 다소비 국가다. 국토는 좁고 인구는 적지만, 산업 구조가 다량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제조업 위주로 구성됐다. 모터, 콤프레셔, 조명, 냉난방 공조 등 수많은 기기를 고효율 제품으로 교체하면 상당량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관련 실적은 미미하다. 2008년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이 발표된 이후부터 에너지효율화를 추진했지만 OECD 국가 기준 최하위다.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효율화 설비를 설치해 절감효과를 얻는 것과 기존 전력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 업계는 취약한 원가 반영 구조를 지적했다. 실제 전력을 생산하는데 투입되는 비용이 전력도매시장가격(SMP)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한다. 대표적으로 기동비용과 환경비용 미반영, 연료비 정산 시기 차이 등을 예로 든다. 신규설비에 대한 투자보수율 결정 권한이 없는 것도 불만이다.
이달 국감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국제유가 상승분이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기요금이 원가를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단기적으로는 격차가 있지만, 장기적인 연료비 상승하락 추세를 보면 원가 반용 요인이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산업계는 연료비 변동을 장기적인 추세로 분석해 시장가격을 바꾸지 않는 것은 기업에 불확실성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재생에너지 측면에서도 원가 반영 시장구조는 필요하다. 현재 재생에너지는 SMP와 함께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판매금액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다른 발전원과 달리 SMP로만 수익을 올리면 적자가 나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전기요금 수준에선 수익이 나지 않는 만큼 REC라는 보조금이 적용되고 있다. 향후 발전단가 하락에 따라 수익성이 빠르게 좋아질 전망이지만, 그 전에는 발전단가를 시장에 제대로 반영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민간 참여에 따른 에너지시장 자유화는 세계적인 동향이다. 다양성으로 인한 혁신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한 만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원가 반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에너지 신산업과 전통산업간 균형
에너지 시장은 기술·산업 경쟁이 유독 심한 곳이다. 국가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총량은 정해져 있는 만큼 더 많은 점유율을 확보하려는 '파이' 싸움이 치열하다. 전력 분야에선 정책적으로 신재생에너지와 LNG 비중이 커지면서 원전과 석탄화력은 쇠퇴기를 앞두고 있다. 이 과정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더 좁게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태양광과 풍력, 바이오매스간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정부는 수소를 또 하나의 자원으로 육성하려는 분위기다. 수소자동차와 충전인프라 확대를 통해 또 다른 친환경 에너지원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 산업이 등장하면서 점차 기존 주자의 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
에너지 시장에 신산업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존 산업 유지도 중요하다. 현재 에너지 산업 전체에서 전통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올해 6월 기준 전력과 운송, 난방, 석유화학 등 모든 에너지 분야를 대상으로 할 때 석유 의존도는 41.2%, 석탄 26.8%, LNG 14.5%, 원자력 10.3% 수준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앞으로 역량을 집중할 에너지 효율화 산업의 성공을 위한 기초체력은 다름 아닌 석유와 석탄, 원자력 등 기존 산업에 있다. 산업과 일자리 규모가 큰 분야로 재생에너지 수소 육성 정책과 함께 산업 유지 정책이 필요하다. 정치권에서 원자력 분야 산업 생태계 단절과 인력 유출 우려를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통 에너지의 효율적 활용도 고민해야 한다. 미세먼지 이슈로 최근 기피 연료로 지목되고 있는 경유가 대표적이다. 경유는 석유 정제과정에서 생산되는 석유제품이다. 우리나라 석유화학 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선 분야다. 우리가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 경유는 계속 생산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경유 사용을 제한한다면 다른 활용처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전력 분야에서는 원자력과 석탄화력이 같은 처지에 있다. 그동안 정부는 수조원의 R&D 과제를 통해 수출형 원전 APR 1400과 함께 핵심기술을 국산화했다. 석탄화력 역시 불과 5년 전만해도 친환경 발전으로 인정받던 초초임계압 1GW 발전설비를 개발하는데 역점을 두고 성공했다. 재생에너지로 분류된 석탄가스화발전(IGCC)도 국산화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들 기술에 대한 기대감은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1GW 석탄의 경우 수출을 추진 중이지만 환경단체가 금융기관투자를 반대하는 등 장벽에 부딪혔다. 그동안 해당 분야 사업을 통해 성장해 온 두산중공업은 에너지전환 로드맵 발표 이후 계속 주가가 떨어져 지금은 '신저가'를 이어간다.
이달 초 일자리위원회가 발표한 대로 에너지신산업은 일자리 확대와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만큼 전통 에너지 분야 파이가 줄면서 발생하는 부작용도 있다. 신산업은 물론 전통 에너지에도 대해서도 정책 균형이 맞춰져야 기술 단절, 산업 경쟁력 축소,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미래형 에너지 정책 공감대
에너지전환 정책을 논할 때 모범모델로 가장 먼저 논의되는 사례는 독일이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중심 분산전원 시스템을 구축했고, 최근 우리 정부가 주목하는 수소 충전 인프라 산업도 상용화 수준에 근접했다. 무엇보다 금융투자가 잘 이뤄지면서 에너지효율시장 성장 일자리 창출 등 성과가 나오고 있다
독일이 에너지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원동력은 변화에 대한 공감대였다. 25년 간 탈원전 공론화를 통해 전기요금 인상 등 국민 생활여건을 바꾸는 문제를 수용했다. 반대도 있었지만 저소득층 프로그램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우리 정부의 에너지전환은 완벽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했지만 원전에 국한된 이슈였다. 전체 에너지 믹스와 산업, 사회경제적 여파를 고려한 공감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탈원전 결정 자체도 논란이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원전의 단계적 감축을 권고했지만, 에너지전환 로드맵 이후 나온 에너지 계획은 '원전 제로'를 목표로 했다. 지난해 국감에서 김지형 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은 “공론화위원회의 원전 축소 정책 권고가 원전 제로를 명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에너지전환 공감대는 사회 여론만으로 결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앞서 거론한 에너지 산업과 시장에 대한 대책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 원전이 경쟁력을 상실하기 전에 재생에너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기존 플랜트 산업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전체 산업 차원에서 어떤 변화가 발생할 지를 예측해야 한다. 전기요금 한계선 등도 검토해야 한다.
저수지 태양광 반대 등 최근 재생에너지 사업에서 민원 문제가 발생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정책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는 판단의 근거가 될 기술과 산업적 분석이 필요하다. 정부 초기 사회수석실에 있던 에너지전환TF가 최근 경제수석실로 옮긴 것도 이 같은 배경으로 풀이된다.
에너지전환의 영향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최근 한전의 적자 상황을 놓고 보면 전기요금 동결이 가장 큰 이유다. 발전단가 상승 이유에 대해 국제유가 상승과 원전 축소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유를 떠나 원가 상승은 반영되지 않고 있다. 덕분에 가정과 산업계는 전기요금 인상을 걱정하지 않지만, 전력산업계 투자가 감소하고 있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은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한전의 적자가 늘어나면서 올 상반기 배전유지보수 예산 집행실적이 1조1524억89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2386억원) 줄었다고 밝혔다.
전기요금이 직접 인상되지 않더라도 그 영향은 다른 형태로 국민과 기업에 다가온다. 대기업 차원에서 보면 산업용 전기요금이 낮으면 제조비를 줄일 수 있지만, 에너지계열 자회사의 수익하락을 가져온다. 주요 선진국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이 세계무역기구(WTO) 통상 규범에서 철강 업체 통상 문제로 거론되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과거 독일이 25년 간 진행한 공론화 과정의 출발점쯤에 있다. 당시 독일보다 전기요금 수준이 낮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저항이 더 클 수 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긍정과 부정 효과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의견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을 줄이고 정치적 갈등과 구시대 제도에서 벗어나 바람직한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