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 회자됐던 일화가 있다. 대통령 업무보고 때 산업자원부 한 국장은 노 대통령에게 같은 내용을 반복해 건의하는 무례(?)를 범한다. “저에게 할 말씀 있으시면 하시지요”라는 대통령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을 번쩍 들고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올라가는 속도는 산업기술이 튼튼한 나라일수록 빠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산업기술예산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 대통령이 참석자와 일일이 악수하는 자리에서도 “대통령님 산업기술예산 정말 중요합니다. 신경 써 주십시오”라고 재차 건의했다. 자칫 자신이 맡고 있는 분야에 대한 지엽적 이기적 건의를 보고체계조차 무시한 채 진행한 비상식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사건(?)은 토론을 즐기는 노 대통령의 웃음과 “잘 알겠습니다. 신경 쓰겠습니다”라는 화답으로 잘 마무리됐다. 당시 그 국장이 중요하다고 했던 산업기술예산은 지금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기반을 있게 하는데 일조했고, 예산 규모도 급증해 2018년 3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이번 정부에서 부처로 승격된 중소벤처기업부는 경제·산업 현장 접점에 있는 부처다. 중기부 공무원은 어느 부처보다 업계 현실과 고민을 잘 알 수 있는 위치다. 그런 중기부에서 실무 공무원의 정책 제안이 실종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소소한 건까지 장관이 모든 결정권을 행사해 공무원들은 입을 다물었고 국장회의는 마치 화백회의를 방불케 한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현장 접점에 있는 공무원의 판단과 분위기가 그 위로, 더 위로 전달되지 못하고 정책과 현장 괴리만 커지게 된다. 지금 기업이, 산업계가, 경제계가 절실히 원하는 경제부처 공무원상은 일선 현장의 상황을 정책에 반영해 줄 수 있는 통로가 돼 주는 공무원이다. 크게 보면 그런 부처다. 이해당사자와의 접점에 있는 공무원(부처)의 목소리가 커져야 실제 기업하기 좋은 나라, 기업할 수 있는 환경으로 빠르게 바꿔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부처간 아이템, 정책 선점 경쟁이 치열했다. 똘똘한 육성 진흥 정책을 발굴하기 위해 이슈를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경제·산업 부처와 공무원은 많은 정책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기업의 소통창구가 됐다. 요즘 관가에서는 부처간 영역 및 정책 주도권 싸움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정부가 진정 기업을 위한 정책에 관심이 있다면 현장의 우려와 애로를 충분히 듣고 실질적으로 정책에 제대로 반영해 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맡은 분야 정책 예산 확보를 위해 예산 부처를 찾아다니며 정책을 설명해야 한다. 때로는 부처간 업무가 겹치더라도 자신의 부처가 더 잘 할 수 있는 정책이 있다면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추진해야 한다. 융합시대다. 딱 떨어지는 담당부처는 없다. 부처간 아이템 충돌은 당연하다. 현 정부 아젠다인 4차산업혁명 같은 중요한 이슈에는 모든 관계 부처가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현안이 돼 정책 과제를 쏟아내야 한다.
두 달 후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 3년차에 접어든다. 기업인 사기가 바닥이다. 경제부처 공무원 사기도 떨어졌다. 경제가 악화하는 상황이지만, 기업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는 기업인은 많지 않다. 실무 경제 부처 공무원의 기를 살려야 한다. 그들이 발로 뛰어서 이뤄낸 성과에 보상과 평가가 있어야 한다. 스폿라이트를 쏴 줘야 한다. 그리고 기업이 공무원을 신뢰하고 정책 협조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부처 공무원이 현장 접점에서 판단한 중요한 정책을 “대통령님 OO 정말 중요합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산업 밑바닥의 정서가 위로 전달돼야 균형 있는 정책이 시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ICT융합산업 총괄 부국장·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