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냐 다른 것이냐.'
1990년대 미국인이 TV를 장만할 때 화두였다. 소니 TV가 좀 비싸도 만족도가 월등했기 때문이다. 거실에 소니 TV를 장만해 놓으면 기분이 우쭐해졌다. 요즘 시쳇말로 '간지'가 났다. 미국 TV 시장 절반 이상을 소니가 휩쓸었다.
소니 아성이 무너진 것은 10년 전이다. 2008년 첫 적자를 기록한 뒤 4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2년 소폭 흑자 전환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2년 연속 1200억엔 이상 적자를 기록하며 몰락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TV에서 삼성과 LG에 밀리고, 스마트폰 시장에선 존재감조차 없었다. 거함 노키아가 침몰하듯 소니도 모래성에 비유됐다. 경제연구소는 앞다퉈 '소니 사례에서 배우는 계획의 오류' '소니 실패에서 배우는 교훈' 등의 보고서를 쏟아냈다. 한때 세계 전자업계 '롤 모델'에서 '실패학 대명사'로 추락했다.
그런 소니가 보란 듯 부활했다. 2015 회계연도부터 3년 연속 흑자를 냈다. 지난 5월 발표한 2017 회계연도 실적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발표한 2018년 1분기 실적은 전년 동기보다 1% 상승했다. 2년 연속 최고치 경신을 예고했다.
다시 소니를 연구한다. 이제 왜 망했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부활했느냐다. 쇠락한 노키아와 대비되면서 소니 재기는 더 주목 받는다. 소니 부활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차별화'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되는 뚜렷한 경영 전략을 꼽는다. 비용을 줄이면서 못하는 것은 과감히 버렸다. 그 대신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차별화하면서 그것에 집중했다. TV 사업은 몸집을 줄이되 고급화로 승부했다. 'VAIO'라는 브랜드로 유명하던 PC사업부는 차별화가 어렵다고 보고 과감하게 포기했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회장은 2012년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뒤 3년 단위 중기계획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소니는 전자, 엔터테인먼트, 금융 등 3대 사업을 축으로 환골탈태했다.
소니 부활은 일본 경제 부활과 오버랩 된다. 일본 경제는 완전 고용에 가까울 정도로 호황이다. 일본 정부가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기업 친화 전략을 일관되게 실행에 옮긴 덕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자 다시 경제 패권 국가를 꿈꾼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전환점으로 삼았다. 일본 정부와 재계는 '올림픽에 맞춰 5G 통신과 8K TV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구체화한 비전을 공유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세계 최고 콘텐츠, 하드웨어(HW), 네트워크, 단말기, 서비스 등을 내놓겠다는 마스트플랜에 맞춰 단계를 착착 밟아 가고 있다.
소니와 일본의 부활 전략은 어찌 보면 정공법이다. 세부 비전을 세우고 일관되게 실행했다. 중국도 '중국제조 2025'라는 비전을 세우고 '전자대국'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한국이 고도 성장을 구가할 때도 'CDMA 세계 첫 상용화' 'IT 839' 등과 같은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내년 한국 경제 전망은 어둡다. 전통 제조업이 무너지고,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리더십도 흔들리고 있다. 반도체 슈퍼 호황은 고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다. 2020년 전자강국 부활을 내건 일본과 2025년 제조강국 도약을 외치는 중국 틈새에서 방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경제' 전략은 여전히 공허하다. 대한민국이 노키아의 길을 갈 것인가 소니의 길의 갈 것인가.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비전과 실행력이 이젠 구체화돼야 한다.
장지영 성장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