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Kiosk). 공원이나 역에서 신문이나 담배 등을 파는 간이매점을 말한다. 원래 작은 궁전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쿠슈크'에서 유래했다. 터키에선 별장이나 정원에 만든 작은 개방형 건물을 '코슈크'라고 불렀다.
손님이 오거나 행사 때면 코슈크는 음료를 제공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이것이 유럽 정원에 유행하면서 키오스크라고 불리게 됐다. 게다가 그즈음 유럽에선 번화가 길가로 트인 박스형 가게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인자판기의 원조 격인 이것들도 키오스크라고 불렸다. 터치식 모니터가 달린 현대식 키오스크의 원조가 13세기에 있은 셈이다.
1998년 가을 어느 날 모 이브라힘은 영국 런던 중심가 MSI 회의실에서 고객을 맞고 있었다. 고객은 대부분 글로벌 텔레콤 기업 경영진이었다. 회의를 마칠 즈음 이브라힘이 궁금한 듯 물었다. “왜 아프리카에는 다들 관심이 없죠. 실상 우간다는 지금 바로 라이선스를 받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예상 밖에 싸늘한 반응이 돌아왔다. “이브라힘, 미안하네만 나더러 이사회에 가서 이디 아민이란 미치광이가 있는 나라에 투자할 것을 설득하라고는 하지 말게.”
과연 의미 없는 시장일까. 이브라힘은 배웅을 마치자마자 종이를 꺼내 생각나는 대로 써 보았다. 유선 전화망조차 아직 없다. 다른 통신 수단도 전무하다. 실상 인구 5000만명 콩고에 등록된 전화는 3000대뿐이다.
1998년 이브라힘은 셀텔을 설립한다. 자신의 신용을 담보로 4억달러를 모았다. 1998년 말라위, 잠비아, 시에라리온을 시작으로 1999년엔 가봉·차드·콩고, 2000년 부르키나파소·니제르·수단, 2001년에는 탄자니아까지 사업을 넓힌다. 이해 매출 2억달러를 넘겼고, 매해 50% 성장한다. 2005년 쿠웨이트 통신 기업 MTC가 셀텔을 34억달러에 인수한다. 5년이 지난 2010년 인도 바르티 에어텔은 이 지분을 107억달러에 사들인다. 아프리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이었다.
이브라힘은 10년 만에 맨땅에서 107억달러짜리 비즈니스를 만들어 낸다. 온갖 난제를 뚫어야 했다. 시장 신뢰부터 문제였다. 사업 허가는 공개입찰로 따내야 했다. 도로가 없으니 설비에 발전기까지 헬리콥터로 날라야 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를 설득하느라 몇 년을 허비하기도 했다. 킨샤사(콩고민주공)와 브라자빌(콩고)은 콩고강을 마주하고 있지만 통신망을 놓는데 2년이나 걸리기도 했다.
결과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가난한 고객들은 몇 달러짜리 선불카드를 구입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수요가 넘쳐 주체할 수가 없었다. 2005년 MTC가 인수할 무렵 셀텔은 13개 나라에 500만 가입자를 두고 있었다.
셀텔 스토리를 상징하는 것이 하나 있다. 셀텔의 키오스크라고 불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디지털 키오스크와는 거리가 멀다. 먼지 날리는 길가에 나무를 덧댄 합판으로 양팔 뻗은 넓이의 벽을 만들고, 한쪽에 가판을 댄 조그만 양철통이다. 붉은 페인트를 칠해 '레드박스(Red Box)'라 불린 이곳에서 젊은 점주들은 셀텔의 로고를 붙이고 선불카드를 팔았다.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장애물이란 단어의 본질은 무엇일까. 아무도 안 했다는 것일까, 안 된다는 것일까. 비즈니스 장애물은 혁신에선 이정표가 된다. 이브라힘과 셀텔의 레드박스가 보여 주는 것도 바로 이것인 셈이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