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대전 소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을 방문해 '제4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대화'를 주재했다. 이날 현장대화에는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7개 부처 차관급과 기업인 4명을 포함한 민간 전문가 11명이 참석, 신기술 사업화 관련 규제 혁신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논의된 규제 혁신 과제 가운데에는 기존 기술에만 적합하던 기술 평가 방식을 개선해 신기술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한다든가 기존 학교 내진 시설에 배제되던 신공법 참여를 허용하겠다는 눈에 띄는 제안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날 자유토론에서는 지금은 문제가 아니지만 향후 새 규제가 제정되거나 정작 기술 개발에 성공했지만 규제 환경이 바뀌면서 발생하는 이른바 '규제 불확실성'을 어떻게 대응할 지 논의도 있었다.
언뜻 보면 이 두 가지 사안을 규제 혁파에 국한된 문제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실상 이것은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일단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실상 현 제도가 신기술을 수용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페널티를 주고 있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와 함께 이 총리가 언급한 '미래 규제'에 대한 선제 대응도 제도의 불확실성과 사회 비용을 줄이는데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면 이날 혁신 과제로 제시된 녹조 저해 기술이나 내진 신공법 경우 기존 기술 평가 방식이나 제도가 신기술을 수용하지 못해서 적용할 수 없는 현실을 대변한다. 실상 기술 가치 평가 과정에서 시장이 분명하면 가치를 쉽게 인정받을 수 있지만 수요가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술의 경우 그 가치는 할인 당하기 십상이다.
이런 문제는 개별 기술 차원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연구개발(R&D) 사업을 추진하는데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예비타당성(예타) 평가를 보더라도 기술의 미래 가치를 인정받기는 쉽지가 않다. 경제성 분석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시장수요접근법'은 기술 개발 편익을 따질 때 앞으로 시장 규모가 얼마나 크게 될 것인가를 보며 접근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추정의 모수가 되는 시장 규모가 크고 확실하다면 높은 편익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역으로 시장이 분명치 않은 신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R&D 사업은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셈이다. 결국 예산이 궁하고 시급한 부처는 어떻게든 시장이 명확한 기술을 지향할 수밖에 없으니 미래 가능성보다는 가깝지만 명확한 시장을 선호하는 '미래에 대한 역선택'을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다.
'미래 규제'가 만드는 불확실성의 비용도 정부 차원의 검토가 필요하다. 이날 토론회에서 규제 불소급 기준이나 사전 공시 제도 같은 것이 제안된 점은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행 법제도 이내에서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날 거론된 규제 불소급의 경우 규제가 확정되기 전에 수행되고 있는 사업이 부정이나 불법한 것이 아니었다면 새로 만들어진 규제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R&D를 추진할 때도 미래에 이 기술이 개발됐을 때 대두될 규제 문제를 미리 예상해서 사전에 개선을 추진하는 일종의 선제 대응 역시 바람직한 제안이다.
무엇보다 이날 회의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20개의 제도 개선 과제다. 바로 미래와 불확실성이라는 것을 우리 정책에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문제를 인식했다는 점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얻은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정책 책임자와 전문가가 모여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어떤 문제라도 수용할 창의 대안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장대화라면 수백 번 해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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