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핵심기술 재지정을 앞두고 디스플레이 장비 업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장비 모듈 기술을 국가핵심기술에 포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비업계는 수출길이 막히는 강력한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디스플레이 분야 국가핵심기술 지정·해제·변경안을 놓고 업계와 논의하고 있다. 최근 톱텍 OLED 핵심 기술 유출 논란이 불거지면서 대형 패널 제조사와 국가정보원은 OLED 장비 기술도 핵심 기술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반면에 장비 기업은 수출길이 막혀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현재 디스플레이 분야 국가핵심기술은 8세대 이상 TFT-LCD 패널 설계·공정·제조·구동기술과 AMOLED 패널 설계·공정·제조 기술이다. LCD와 AMOLED 모두 모듈 조립 공정 기술은 제외돼 있다.
산업부는 기존 핵심 기술에 AMOLED 모듈 조립 공정 기술을 포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AMOLED 전공정에 속하는 화소 형성 및 소자 보호 봉지를 비롯해 열처리, 레이저리프트오프(LLO), 측정, 수리, 모듈화 등 플렉시블 OLED 장비 설계 기술도 국가핵심기술로 새로 지정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장비 업계는 “수출을 가로막는 강력한 규제”라고 주장했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수출할 때마다 정부에 신고하거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부 연구개발(R&D) 자금으로 개발한 기술은 '승인', 그렇지 않은 기술은 '신고' 대상이다.
승인·신고 대상 기술 모두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심의에 일정 시간이 걸리는 데다 심의에서 수출 불허가 결정되면 계약을 파기해야 하는 불확실성까지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LG디스플레이가 지난 2017년 중국 광저우에다 8.5세대 OLED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정부에 승인을 요청했지만 심의와 승인이 미뤄지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신고는 신청 접수일로부터 15일, 승인은 45일(기술 심의 기간 제외) 안에 심의를 마쳐야 한다. 그러나 LG디스플레이는 최종 승인을 받기까지 6개월이 걸려 사업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장비기업 한 관계자는 “OLED 장비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산업부는 산업 기술 심의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것”이라면서 “수많은 장비를 모두 심의한다는 건 현실상 어렵고, 어떤 장비 기술을 지정할지 구체화해서 정의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비업계는 OLED 장비를 국가핵심기술에 포함시키면 일본 장비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얻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 고객사 입장에서는 한국 장비를 구매하고 싶어도 정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일정보다 심사가 지연될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구매가 까다로워지면 정부 규제가 없는 외산 장비로 자연스럽게 눈을 돌릴 수 있다.
국내 한 장비 기업 대표는 “우리 정부가 OLED 장비를 핵심 기술로 지정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중국 고객사가 장비 구매가 가능한지 여부를 문의해 왔다”면서 “아직 확정된 사안도 아닌데 벌써부터 한국 장비사가 일본 경쟁사와의 수주 경쟁에서 불리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반면에 국정원과 패널 제조사는 이 같은 장비 업계 반응에 난색을 표했다. 중국이 이미 LCD 기술은 한국을 넘어섰고 OLED 기술 격차도 빠르게 좁혀 오는 만큼 중국에 어떤 장비와 기술을 수출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내 한 장비기업 대표는 “장비는 고객사 맞춤형으로 주문 제작하는 특수 제품인 만큼 수출할 때 일부 장비기술 정보를 고객사에 제공해야 한다”면서 “이를 기술 유출로 간주한다면 정부가 각 장비 종류에 대해 정보 범위를 일일이 구체화해서 설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업부는 이달 중 국가핵심기술 개정안을 놓고 전문위원회를 한 번 더 개최한다. 이후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열어 개정안을 심의·의결할 계획이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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