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석의 新영업之道]<14>갑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누구의 돈인가요

[이장석의 新영업之道]<14>갑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누구의 돈인가요

“두 번째 안으로 올라온 회사로 정합시다. 가격이 비싸지만 그 회사는 리베이트나 뇌물을 절대 용인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리베이트를 챙기는 직원이 있다면 결국 우리가 지불하는 돈의 일부를 업자를 통해 직원이 부정으로 받는 것이 되는데 직원들이 일을 하면서 못된 짓을 하도록 해선 안 되지요.”

모 그룹 회장이 업무용 주 컴퓨터 선정 관련 보고를 받고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에서 했다는 내용으로 오랫동안 회자된 이야기다. 그 이유만으로 의사결정을 하진 않았겠지만 이런 리더가 있었기에 지금도 그 회사는 투명한 비즈니스 윤리를 지켜 오고 있다.

30년 이상 영업 현장에 있으면서 비정상 관계와 거래에 의해 황당한 의사결정을 하는 '갑'과 그런 갑에 기생하는 '을'을 셀 수 없이 많이 봤다. 어찌할 수 없음에 답답하기도 했고, 울분이 차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당당한 선택을 한 고객도 많았다.

결국 '갑'의 문화와 분위기에 달려있다.

2년 전 창업 조언을 받으러 온 인연으로 멘토링을 겸해 만나는 벤처의 진 모 최고경영자(CEO)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요즘 중요한 비즈니스 계약을 위한 마지막 단계입니다. 고객 실무 책임자와 만나면서 식사도 하고 술자리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고객이 바라는 접대 수준 대응을 놓고 동업자인 영업 리더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영업 리더는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고객이 원하는 대로 맞춰 주자고 주장하고, 저는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고 있지요. 수주를 위해 영업 리더 의견대로 따라야 하는 건가요? 진짜 고민입니다.”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려는 진 대표를 보니 좋네요. 어려운 얘기지만 원칙을 지키세요. 중요한 비즈니스를 잃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회사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과정입니다. 고객이 모두 그렇지는 않아요. 지속해서 다양한 고객을 만나면 원칙을 지키는 진 대표를 인정하는 고객은 그것 때문에 진 대표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고객이 하나 둘 늘면서 평판이 쌓이지요. 어렵고 긴 여정이지만 그때까지가 중요합니다.”

“접대에서 적정 금액은 극히 모호합니다. 규정을 정해도 사용하는 사람의 의식이 잘못되어 있다면 의미가 없어요. 거의 모든 회사가 접대 한도금액을 정해서 운영하지만, 그것은 법과 같은 거지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상식과 양심이지요. 내 돈으로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는다면, 터무니 없이 비싼 식당을 가겠나요? 금액을 정하고 안 정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영업팀의 의식문제라고 봐요. 과하지 않고, 잘못된 것이 아니고 상대인 '갑'이 떳떳할 수 있는 접대가 어떤 접대인지는 '을'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을'이 지불하는 식대, 술값, 여행경비, 그린피, 선물 등 모든 것은 '을'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갑' 자신의 돈이다. '을'이 제품 및 서비스 대가로 받은 것에서 지불하는 내 회사 돈이다.

회사 돈으로 술 마시고 골프 치는 사람은 없다. 회식 또는 회사 행사 등 공식 집행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런 행태를 용인하는 기업이나 조직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왜 '을'을 통해서 사용되는 회사의 불법 돈에 대해 '갑'은 둔감해 하는가.

주말마다 접대 받으며 필드를 다니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현관문을 나설까. 밤마다 상식을 뛰어넘는 값 비싼 식당에서 얻어먹는 '갑'은 그 돈의 출처를 알고 있기는 하는 것인가.

'을'을 피하라는 것은 아니다. '갑'과 '을'은 서로 적이나 경쟁자가 아니라 파트너다. 당연히 업무 협의를 하면서 식사를 할 수도 있다. '갑'과 '을'이 일을 위해 서로 마음속 얘기를 터놓고 얘기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양심에 거리낌 없는 정도, 방법을 지키는 선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런 '갑'은 많다.

영업 초기에 만난 한 고객사 관리자는 공식 회식이 아니면 우리와 외부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함께했고, 프로젝트 경비에 여유가 있으면 직원 교육을 더 시키라고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분은 꿋꿋이 원칙을 지키며 임원으로서 현장에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행운이다.

이 땅의 갑은 모두 합리화되고, 양심에 따른다. 단지 우리는 하던 대로 무심코 해 왔을 뿐이다. 한 번만 생각하면 될 일이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습관처럼 받지 말고, 하던 대로 무심코 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면 된다. '누구 돈으로 난 접대를 받고 있는가?'

“우리에게 그런 멋진 곳에서 저녁 사 주지 않아도 돼요. 예산 여유가 있다면 개발 요원 교육 더 시켜 주세요. 우리가 지불한 프로젝트 경비니 제가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섭섭해 하지 마세요.”

27년 전 고객 리더들과 식사 자리를 제안했을 때 고객이 한 말이다.

이장석 한국영업혁신그룹(KSIG) 대표 js.aquina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