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계좌 아래 여러 개인 거래계좌를 두는 이른바 집금계좌(벌집계좌)가 시장에서 횡행한다. 지난해 벌집계좌 운영을 금지한 정부는 아예 사후관리에 손을 놓았다. 그 사이 중소형 거래소뿐만 아니라 대형 거래소까지 벌집계좌를 통한 고객 유치에 나섰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소형 암호화폐거래소에 이어 대형 거래소 후오비코리아가 원화마켓을(KRW) 오픈하면서 벌집계좌를 운용해 논란이 되고 있다.
2017년 12월 금융위원회는 정부부처 합동으로 '가상통화 투기 근절을 위한 특별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핵심은 암호화폐 거래실명제, 거래소와 은행의 자금세탁방지 의무강화 조치를 통해 투기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금융거래에 본인확인이 가능한 실명거래를 정착시키기 위해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대부분 은행이 신규 계좌발급을 중단하면서 대형 암호화폐거래소 거래량은 급감했다. 반면에 엄격하게 금지한다던 벌집계좌를 중소형 거래소에서 다수 운용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정부 관리감독 대상이 대형 거래소에 집중된 틈을 타 중소형 거래소가 벌집계좌를 대거 운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자가 암암리 불법 계좌를 운용하는 중소형 거래소로 갈아타면서 거래소간 순위가 역전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실명계좌를 열겠다던 후오비코리아도 결국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고 원화마켓에 벌집계좌 형태로 영업을 시작했다. 주거래은행 법인계좌를 통한 고객 자금 유입이 이뤄지고 있다.
벌집계좌 형태로 자금을 운영할 경우, 본인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어 자금세탁 등 악용될 소지가 있다.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라는 정부의 방침과도 정면 배치된다. 실명계좌가 아니기 때문에 거래자 수가 증가하면 자금 출처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해킹에도 매우 취약하다.
중소형 거래소에 이어 대형 거래소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사후관리가 부실한 틈을 타 벌집계좌를 통해 고객 유입에 나선 셈이다.
후오비코리아 관계자는 “원화마켓 오픈과 관련 고객과 약속한 부분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집계좌를 임시방편으로 운용하게 됐다”며 “여러 은행과 협의를 지속하고 있고 이른 시일 내에 실명계좌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오비의 이 같은 벌집계좌 운용은 정부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소지가 큰 만큼 조사가 필요하다는게 법조계 시각이다. 후오비가 정부가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내부 통제체계 요건을 갖추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암호화폐거래소 법무 담당 변호사는 “거래소의 법인계좌 사용은 정부 지침에 정면 위배되는 행위로 이용자 피해와 자금세탁 방지에 여러 문제가 양산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며 “금융사가 심사를 통해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를 발급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후오비가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내부 통제체계 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당시 정부가 제시한 벌집계좌 문제점은 '이용자에게 피해 발생 우려가 있고, 금융회사 자금세탁 위험관리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편법으로 벌집계좌를 운영했다면 자금세탁 위험성을 알고도 눈감은 처사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후오비 대상으로 상시 점검체계를 운영했는지도 향후 논란의 소지가 될 전망이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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