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사상 처음 연 100조원을 돌파했다. 전체 소비에서 온라인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1%에서 지난해 26%(2018년 11월 기준)까지 확대됐다. 상품을 구입할 때 4번 중 1번은 매장에 가지 않고 PC·스마트폰으로 주문한 셈이다.
온라인쇼핑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법률은 따라가지 못 했다. 소비자 피해, 사업자 혼란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회의원 발의 형태로 전자상거래법 전면 개정을 추진했다. 시대 변화에 발 맞춰 규정을 정비하고, 규제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업계는 개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일부 사안에 대해선 시장 혼란, 부작용 우려를 제기했다.
◇시대 못 따라가는 전자상거래법, 17년 만의 첫 전면 개정
흔히 전자상거래법으로 부르는 법률의 전체 명칭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다. 법률명과 1조 규정 내용대로 '소비자 권익 보호'에 초점이 맞춰졌다.
전자상거래법은 2002년 제정·시행됐다. 초고속인터넷 확산이 본격화되던 시기다. 비대면·비접촉·원격거래라는 특성에 따른 분쟁 발생, 전자문서 조작 가능성에 따른 책임소재 입증 어려움 등이 제정 배경이다. 전자상거래 사업자의 청약·영업·청약철회 등 전주기에 걸친 의무와 책임, 금지행위를 규정해 '상대적 약자'인 소비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지난 17년 동안 총 15차례 개정이 이뤄졌다. 변화된 시장 환경을 반영하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했지만 산발적 개정으로 근본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허점도 생겼다. 오픈마켓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통신판매중개자' 관련 문제가 지속 제기됐다.
공정위는 지난해 업무계획에서 “다양한 유형의 온라인 플랫폼 기반 거래가 등장하고 온라인·모바일 거래 폭증 등으로 인한 사업자 책임 범위의 적정성 이슈가 발생했다”면서 “시장현실을 반영해 전자상거래법 규제 체계와 내용을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 의지를 담아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자상거래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다. 6개 조문 삭제, 3개 조문 신설, 41개 조문 이동·재배치로 전자상거래법 전반에 변화를 꾀했다.
◇교통카드 결제도 전자상거래?…정의 '명확하게'
전자상거래라고 하면 흔히 인터넷쇼핑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행법상 전자상거래 정의는 '전자문서를 이용한 상거래 행위'로 훨씬 많은 범위를 포괄한다. 오프라인(상점·버스 등)에서 이뤄지는 신용카드·교통카드 결제도 현행법상 전자상거래에 해당한다. 통신판매와 통신판매중개 개념은 별도 규정됐다.
전재수 의원은 개정안을 발의하며 “현행 전자상거래법은 2000년대 초 카탈로그·우편 등 전통적 통신판매 개념을 위주로 한 체계”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자적 방식을 활용한 상거래 개념은 보충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온라인 거래 급속한 성장으로 전자상거래가 주를 이루는 오늘날 시장 현실을 감안해 전자상거래와 전자상거래 사업자 위주로 용어·정의 체계를 재정비해 법 해석·적용에 따른 사업자·소비자 혼란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 핵심은 전자상거래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문제가 자주 불거진 '통신판매중개업' 개념을 없앤 것이다. 대신 사업자를 △전자상거래 사업자 △사이버몰 사업자 △통신상거래 사업자 등 3개로 명확히 구분했다.
전자상거래는 '전자적 방식으로 사업자 상품정보 제공과 소비자 청약이 이뤄지는 비대면 거래'로 정의했다. 이에 따른 전자상거래 사업자는 온라인쇼핑몰, 오픈마켓에 입점해 상품을 파는 사업자 등이다. 오픈마켓 사업자가 상품 정보를 제공하고 주문을 받는다면 역시 전자상거래 사업자다.
사이버몰은 '전자상거래를 목적으로 컴퓨터 등과 정보통신 설비를 이용해 설정한 가상의 영업장'으로 정의했다. 말 그대로 '중개' 역할만 해야 사이버몰 사업자로 인정된다. 배달앱이 대표 사이버몰 사업자다. 오픈마켓이 소비자로부터 청약을 받지 않는 등 중개만 한다면 역시 사이버몰 사업자다.
비대면 거래 중 전자상거래가 아닌 것은 모두 통신상거래로 규정했다. 우편을 이용하는 카달로그 쇼핑, 전화로 주문을 받는 TV홈쇼핑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스마트TV를 활용해 상품 정보 제공, 주문이 모두 이뤄진다면 TV홈쇼핑도 전자상거래에 해당한다.
◇오픈마켓 규제 회피 막고 사이버몰 책임 강화…부작용 우려 목소리도
개정안에서 통신판매중개업 개념을 없앤 것은 규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다.
국내 주요 오픈마켓인 11번가·G마켓·옥션 홈페이지 하단에는 하나같이 '우리는 통신판매중개자며, 거래당사자가 아니다'고 쓰여 있다. 문구 한 줄로 이들은 각종 규제를 면제 받는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상 해당 고지를 하면 중개 의뢰자(입점 사업자) 고의·과실로 소비자에게 재산 손해가 발생했을 때 면책이 인정된다. 실제로는 통신판매업을 수행했더라도 통신판매중개자로 인정받아 규제에서 벗어나는 모순이 생긴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행법에도 통신판매중개업자가 통신판매업무를 하면 관련 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면서 “다만 이들이 '거래당사자가 아니다'라는 고지를 하면 면책 되도록 규정돼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통신판매중개업 개념을 없애 오픈마켓도 사업 형태에 따라 책임을 지도록 명확히 규정했다. 지금처럼 상품 소개와 주문·결제를 모두 수행하는 오픈마켓은 전자상거래 사업자로 보고 관련 규제를 적용한다.
실제로 중개 역할만 하는 오픈마켓은 사이버몰 사업자로 구분된다. 다만 이번 개정안에서 사이버몰 사업자 책임도 강화해 소규모 사업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검토보고서에서 “개정안은 사이버몰 운영자가 의무불이행으로 소비자에게 재산 손해가 발생하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규정했다”면서 “적용 영역에 있어 단순 알선·중개 사업모델, 소규모 영세 플랫폼 사업자는 배제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중개 역할만 하는 사이버몰 사업자 책임이 지나치게 무겁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달앱으로 시켜 먹은 음식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배달앱이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공정위 관계자는 “배달앱을 이용해 시켜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을 때 배달앱이 책임을 지는 경우는 판매자 연락처 등 신원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등 의무를 불이행 했을 때”라면서 “행정기관이 시정에 필요한 조치를 하는데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해 소비자에게 발생한 피해에 대해 부담을 지운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통신판매업 신고제 폐지…배달앱 의무 강화
현행 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통신판매업을 하려면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상품 판매를 위해 인허가를 받은 사업자에게 신고제는 중복 규제가 될 수 있고, 새로운 전자상거래 모델 출현을 방해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개정안은 신고제를 폐지하는 대신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사업자 신원정보 미표시·허위표시 제재는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신고제 폐지에 대한 우려 시각도 있다. 국회 정무위에 따르면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는 신고제를 폐지하면 사업자 법 준수 여부 모니터링, 사업자 정보 진위 여부 확인이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공정위 관계자는 “국세청 등이 사업자 정보를 많이 갖고 있다”면서 “신고제가 폐지된다면 '필요 시 공정위원장이 관련 정보를 국세청 등에 요구할 있다'는 식의 조항을 두는 보완책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배달앱 의무도 강화했다. 음식료 등 인접지역 판매를 중개하는 사이버몰 운영자(배달앱 등)는 소비자 피해 등이 발생했을 때 판매자 신원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국내 주요 배달앱은 판매자 상호, 전화번호 등은 대부분 제공하지만 대표자 성명, 주소, 이메일 주소 등은 제공하지 않는 때가 많다.
해당 개정과 관련 국회 정무위는 “소비자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당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