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기업 부사장 출신이 최근 발간한 '산업한류혁명'에서 신흥국의 국가 종합 개발로 한국 불황을 타개할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과거 우리 경제 성장에는 지역별 산업단지가 중추 역할을 했다. 노하우를 살려 신흥국에 맞춤형 산단을 만들어 주자는 논리다. 문화 한류처럼 '산업 한류'를 뜻한다. 물건만 팔면 보호무역 정책에 막히지만 그 나라에 산업을 육성시켜 주면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우리 경제의 살길이 여기에 있다는 걸 오랫동안 해외 영업을 하면서 깨달았다”면서 “삼성, 현대가 지구촌에 산업단지 다섯 개만 만들어도 살아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편 사례로 2008년 삼성전자는 베트남 하노이에 휴대폰 공장을 지었고, 현재 5000개 한국 제조업체가 나가 있다. 우리 산단이 형성되면서 은행·병원·호텔·학교·입시학원까지 진출했고. 각 분야 퇴직자들은 자연스럽게 현지에 근무하게 됐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운행되고 있는 자동차의 8할이 대우차다. 다마스·라세티·마티즈·스파크가 현지에서 생산돼 운행되고 있고, 애정도 충만하다. 한국 군산에서 엔진을 생산하고 우즈베키스탄 나망간 등지에서 보디·베젤이 생산돼 최종 조립된다고 한다. 생산된 차종은 인근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수출되고 있다. 독립국가연합(CIS)에서 한국산 차는 그야말로 발전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우즈베키스탄 자동차 산업은 1990년대 초 대우자동차가 생산 공장을 현지에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2018년에 이 회사는 22만667대를 생산,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2017년에도 전년 대비 59% 증가한 수준이었다. 군산공장이 생산 대수 25만대와 총생산 5조원을 이루며 잘나가던 2011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우즈베키스탄은 비록 소형차 위주이지만 선진국처럼 차량을 보유하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고, 도심에는 수시로 교통 정체가 발생하고 있다.
80여년 전 극동 지역에 살고 있던 고려인 17만명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 강제 이주됐다. 그러나 그들은 협력해서 관개시설을 설치하고 벼농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들 삶의 방식을 회복했다. 엄청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억척같이 살아서 삶의 모범이 된 영웅도 탄생했다. 한국인의 생활력과 성실함의 표상이었다.
군산의 GM공장은 지난해 6월 말에 폐쇄됐다. 직원 2000여명, 협력업체 150여개, 부지 130만㎡가 모두 멈춰 섰다. 군산시 주력 산업이 붕괴되면서 지역 경제는 심각한 침체기로 빠져들었다. 저자의 제안대로라면 군산 공장 같은 자동차 산단의 개도국 배치도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다. 우즈베키스탄은 8할이 평지이고, 도심 이외는 거의 미개척지이다. 타슈켄트 인근의 적당한 부지를 협의하고 공장을 조성해서 볼트 하나라도 모두 이전하고, 종업원도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하면 된다는 아이디어 아닌가.
산단 조성 시 스마트시티 개념을 도입해 최고 수준의 학교·병원·쇼핑몰을 한국과 동등한 서비스로 제공하되 공장이 안정화만 된다면 증설될 라인은 각종 센서로 무장한 4차 산업혁명의 스마트 팩토리로, 전기차와 같은 신차 생산도 가능할 것이다. 인구 5만명이면 자족도시가 가능하다. 식구까지 이주한다면 최고 삶의 터전에 최고 생산기지를 꾸미고, 신흥국에도 산업 발전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복잡한 자동차 산업 구조, 추락하는 유가, 한·우즈베키스탄 양국 간 상호 이해 등을 고려할 때 그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해외 산단 프로젝트 가능성은 전문가에게 맡긴다. 그러나 해외 영업의 달인이 산업 한류를 제안하고 “임자, 해봤어?”라고 한 반세기 전의 도전을 되새겨 본다면, 아니 배고픔 속에서 혹한의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생사의 고비를 넘어 건너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주민 고려인을 생각한다면 언감생심이라 할 수 있을까. 우즈베키스탄에서 김병화가 이룬 집단농장 업적을 100년 만에 다시 한번 이룰 수는 없을까?
신상철 월드프렌즈코리아(WFK) 우즈베키스탄 IT자문관 ssc03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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