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반도체 업황 악화로 올해 장비 투자 규모를 40% 삭감키로 하면서 국내 반도체 장비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해 말 장비 공급 시기가 수개월 지연된 데 이어 올해 실적까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업황에 따른 추가 삭감 가능성도 언급, 보릿고개 탈출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업계는 올해 하반기 업황이 회복세로 접어들지 여부에 기대를 걸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4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최근 거시 경기 변동성 등 흐름을 적극 반영해 장비 투자 금액을 40% 축소할 계획”이라면서 “시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투자 규모를 추가로 줄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장비 공급사들은 장비투자 감축 공식 발표에 이미 예견한 일이라면서도 불안감을 드러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SK하이닉스가 올해 투자 규모를 3조~4조원가량 줄일 것이라는 전망이 돌았다. 지난해 말 미국 반도체 시장조사 업체 IC인사이츠도 올해 SK하이닉스 설비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22% 줄어든 100억달러(11조2070억원)로 내다봤다. 하지만 업황에 따라 추가로 더 줄일 수 있다는 언급에 보릿고개가 장기화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SK하이닉스에 장비를 공급하는 A사 관계자는 이날 실적 발표 뒤 “이미 지난해 말부터 공급하기로 한 장비 입고가 수개월 미뤄졌다”면서 “올해 상반기까지 장비 투자가 얼어붙는 것도 타격인데, 하반기까지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많이 힘들어 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장비공급사 B사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투자를 줄일 것으로 전망돼 새롭지는 않다”면서도 “투자 공백이 추가되면 많은 공급사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반도체 장비 기업 실적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투자 지연·감소로 줄줄이 하향됐다. 이달 초 원익홀딩스, 원익IPS, 원익QnC, 동진쎄미켐, 피에스케이, 주성엔지니어링, 유진테크, SK머티리얼즈, 솔브레인, 에프에스티, 한미반도체, 해성디에스, 유니셈 등 반도체 관련 기업 주가가 대거 장중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반도체 장비업계는 하반기 반도체 업황이 회복할지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올해 반도체 업황을 보며 유연하게 투자한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투자 재개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차세대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데다 데이터센터 수요가 하반기 증가할 수 있어 투자를 마냥 줄이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상반기 반도체 업황 악화를 인정하면서도 “하반기부터 메모리 수요가 회복되는 상저하고 패턴이 예상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반도체 장비업계 관계자는 “고객사들이 모두 하반기 업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상반기에 재고 수준을 낮춘 뒤 추가 투자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돼 하반기에는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