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54>로컬라이제이션 방식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2005년 질레트는 고민에 빠졌다. 인도에는 4억명의 중산층이 있지만 이들에게 '마하3'이나 '퓨전파워' 같은 제품은 너무 고가였다. 서민들이 쓰는 양날면도날은 하나에 1루피, 즉 20원도 안 했다. 일회용 면도기는 아무리 비싸도 15루피를 넘어선 안 됐다.

새 제품이 필요했다. 생산, 포장, 유통까지 새로 짰다. 2010년에 선보인 '가드'는 지금까지도 질레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제품의 하나로 불린다. 현지 시장을 위해 설계된 최초의 글로벌 제품이라는 찬사가 뒤따른다.

베인앤드컴퍼니의 파트너이자 유명 컨설턴트이기도 한 대럴 릭비와 비제이 비슈와나트는 이 사례에 주목했다. 지난 25년 동안 소비자 시장을 지배해 온 표준화 전략이 점차 빛을 바랜 듯 보였기 때문이다.

베스트바이, 테스코, 비에프, 월마트 같은 30개 글로벌 기업을 조사했다. 변화의 징조는 분명했다. 시장은 표준화라 불리는 '스탠더다이제이션'이란 방식에서 다양한 상점, 제품, 가격, 마케팅, 고객 서비스를 무기로 하는 '로컬라이제이션' 방식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표준화의 최대 승자이던 월마트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이젠 자신을 '커뮤니티 스토어'라고 포장하고 있었다.

월마트의 유명한 플래노그램을 예로 들어보자. 이것은 어떤 제품을 전국 어느 매장에 배치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지도 같은 것이다. 5년 전만 해도 월마트는 인스턴트 스프 제품 모두를 5개 플래노그램으로 표시할 수 있었다. 지금은 200개가 넘는 플래노그램이 있다. 월마트가 취급하는 통조림 칠리만 60가지가 넘는다. 이 가운데 세 가지만 전국 유통이고 나머지는 지역 매장용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현지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월마트는 개미와 바퀴벌레 공용 에어로졸 살충제를 내놓은 적이 있다. 미국 남부에선 잘 팔렸지만 다른 곳에선 지지부진했다. 문제는 큰 바퀴벌레를 뜻하는 '로치'라는 용어였다. 날씨 추운 지역에선 흔하지도 않지만 괜히 꺼림칙한 느낌을 줬다. 개미용이라고 라벨을 바꾼 후에야 판매가 늘었다.

두 사람은 세 가지 관점에서 시장을 보라고 말한다. 무엇을(What), 어디에(Where), 언제(When)다. 즉 제품, 장소, 시간을 구별해서 디자인하는 것이 이른바 '로컬라이제이션 3원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품 종류를 무한히 늘리라는 것도 아니다. 현지 수요를 고려해서 맞춤 제품을 공급하되 여전히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테스코는 식료품만 취급하는 슈퍼스토어를 기본으로 하이퍼마켓인 테스코 엑스트라, 도심엔 메트로, 편의점인 익스프레스로 같은 고객마다 다른 수요에 맞춤식으로 매장을 디자인했다. 이 멀티포맷 고객 전략은 고객 명당 여섯 배까지 더 많은 수익을 안겨 주었다. 두 사람은 이것을 '익스트림 로컬라이제이션'이라 부른다.

우리는 대개 고객 수요에 민감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 수요에 맞추면 비용이 올라간다고 핑계를 댄다. 월마트나 테스코가 말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문제는 방법에 있지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2010년 1월 1311루피던 질레트 인디아의 주가는 최근 6500루피 안팎을 달리고 있다. 인도에서 팔리고 있는 일회용 면도기의 세 개 가운데 두 개가 질레트 가드로 알려져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