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56>업마켓 본능

한 무제. 묘호는 세종, 시호는 효무황제다. 긴 중국사에서는 진 시황, 청 강희제와 더불어 가장 위대한 황제로 꼽힌다. 이런 그의 업적과 일생을 한 중국 사학자는 '내강황권 외복사이 미신신선 만년개철(內强皇權 外服四夷 迷信神仙 晩年改轍)'이란 짧은 글로 표현한 적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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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에 안으로 황권을 강화하고 밖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복종시켰으되 나이 들어 미신과 신선을 숭배하고 말년에는 자신의 정책을 철회했다는 말이다. 청을 제외하면 중국사 전체를 통틀어 최대 강역을 차지하고 대국굴기(大國〃起)의 원형을 만든 이 사람 한 무제도 노년에는 진 시황처럼 신선사상에 빠지고, 말년엔 태자가 자결하는 변란을 겪는다. 공과 과가 중첩된 일생이라는 것이 현재의 평이다.

혁신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정의 가운데 하나는 더 높은 이윤과 수익을 제공하는 시장, 소비자를 내것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것을 '업마켓 전략'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실상 기업 입장에선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항공 산업만큼은 다르다. 지난 몇 십년 동안 별반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매번 자기 고객층에 매여 있고, 그렇다고 서비스가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이 산업이 목을 매는 건 이른바 '효율성'이란 것이다.

말이 효율이지 실상은 비용 줄이기다. 어떤 사람은 항공서비스가 과거에 '불만스럽지만 공짜'이던 것이 이제는 거기다 '돈까지 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혹평한다. 새로운 부가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니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수익을 낼 다른 도리가 없다. 흔해진 글로벌 항공 얼라이언스도 이런 연유다. 다른 항공사를 사들여서 몸집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2009년에 델타가 노스웨스트, 2010년에 유나이티드가 컨티넨털, 아메리칸항공이 2001년에 TWA와 2013년에 유에스 에어웨이즈를 각각 사들였다.

그렇다고 여기에 혁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을 생각해 보자. 1967년 텍사스주에서 리저널항공사로 시작했지만 일단 시장에 발을 붙이자 지속해서 업마켓으로 나간다. 구형 항공기는 최신 모델로 바꾸고, 운항 거리와 루트는 늘려 갔다. 보잉 737 단일 기종만 운영한다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우스웨스트의 10가지 철칙'도 이 기본 전략에 일종의 실행 원칙이었을 뿐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미국 학계에는 누구나 동의하는 원칙이 하나 있다. 퍼블리시 오어 페리시(Publish or Perish). 연구 실적이 없다면 언젠가 사라지게 될 거라는 뜻이다. 실상 업마켓도 마찬가지 이유다. 제자리에 영원히 있을 수는 없다. 역설로 누군가는 당신의 고객을 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원칙이자 본능이 된다.

한 무제는 말년에 태자 무고 사건을 겪은 후 윤대죄기조(輪臺罪己詔)를 반포한다. 상홍양(桑弘羊)이 흉노 방비를 위해 신강성 윤대현(輪臺縣)에 군대를 두자는 건의에 한 무제는 백성의 고통이 이미 커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내린 이 조서에 그동안 자신의 정책이 잘못됐음을 자책하며 밝힌다. 훗날 자치통감 저자 사마광은 이것이 바로 한이 진나라처럼 망하지 않은 이유라고 평했다.

지금 사우스웨스트는 국내선 여객 수로 보면 그토록 합병으로 몸집을 불린 아메리칸, 델타, 유나이티드를 앞지른다. 사우스웨스트에 자리를 뺐긴 이들 항공 3사에 후회거리는 없을까. 만일 여전히 인수합병(M&A)밖에 전략이 없다면 조만간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