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단순 폭행 사건으로 시작한 '버닝썬' 사건이 마약, 몰래카메라를 넘어 경찰 연루로 이어지며 여전히 진행형이다. 수년 전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전 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의혹도 다시 불거지며 검찰은 물론 주요 정치인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혀 별개로 출발한 두 사건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1 야당 원내대표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발언은 논란 범위를 70년 이전의 삶으로까지 몰고 갔다. 많은 문제가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해묵은 논란은 또 다른 분열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 부딪친다.
최근 일어나는 여러 사건과 이슈는 우리 사회 어느 한 곳, 한 시점 문제로 한정짓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어떻게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대단히 어렵다. 어느 쪽이든 불리한 접점에 처하면 '너희 때는' 또는 '너희는'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일명 '물타기'다. 문제는 이게 먹힌다는 것이다. 해결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냥 접고 갈 수는 없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빨리 풀어야 한다. 뒤로 갈수록 꼬인 실타래는 더 꼬이기 때문이다.
'맹자'에 실린 고사 가운데 '오십보백보'가 있다. 별 차이가 없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혜왕이 자신을 찾은 맹자에게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맹자가 여기에 답하며 비유해 인용한 말에서 유래됐다. 전쟁에 나간 병사 가운데 한 병사가 백 보를 도망가고 또 다른 한 병사는 오십 보를 도망갔는데 오십 보를 도망간 병사가 백 보를 도망간 병사를 보고 겁이 많다며 비웃었다는 말이다. 자신이 다른 왕들보다 더 선정을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는 혜왕에게 '인의(仁義)'가 기반이 되지 않은 정치는 다 '거기서 거기'라며 꼬집는 맹자의 기개가 잘 드러나는 고사다.
현실적으로 따져볼 때 오십 보와 백 보가 정말 같은 것일까. 이 고사에 반기를 들어본다. 전장에서 도망친 결과야 같지만 오십 보를 도망간 이의 결심은 그만큼 늦었을 수도 있고, 다시 되돌아 싸우려는 마음이 남았을 수도 있다. 반대로 적군을 향해 달려가는 병사의 오십 보와 백 보 전진을 같은 선상에서 평가할 수 없다.
물론 맹자의 말이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오십보백보'를 가져다 쓰는 현 시대의 잘못된 해석을 얘기하고 싶다. 조만간 주요 부처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야당은 날선 비판을 이어 갈 것이고 여당은 이를 방어할 것이다. 정치권이 불리한 상황에서 내세우는 '너희 때는'이라는 말도 어김없이 등장할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다 똑같은 놈들'이라며 정치 불신만 더 키울 것이 뻔하다.
이제는 '너희는 그랬지만 우리는 아니다'라는 다름을 보여 줘야 한다. 누군가는 연결고리를 끊어야 하고, 잘못된 과거는 바로잡고 가야 한다. 물론 이번에도 이 기대는 여지없이 깨질 것이다. 이 때문에라도 유권자 또는 국민은 시각을 새롭게 해야 한다. 정치권 등 사회 권력층을 바라볼 때 오십 보와 백 보를 달리 봐야 한다. 오십 보와 백 보가 같을 수 없다. 특히 잘못을 논할 때 백 보는 오십 보보다 갑절만큼이나 더 나쁘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