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5000만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 300명이 한데 모여 자신을 뽑아준 지역과 단체를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들고 정비하는 곳입니다. 300명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니, 이견도 많고 싸움도 많이 합니다.
2019년 3월 국회에선 어떤 일로 제일 많이 싸우고 있을까요? 바로 '선거법'입니다. 선거법과 연계한 패스트트랙도 중요한 이슈죠. 왜 선거법과 패스트트랙이 중요한지, 각 정당이 한치 양보도 없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Q:선거법은 무엇인가요.
A:선거법은 말 그대로 선거를 하는 방법을 정한 법입니다. 정식명칭은 공직선거법이구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지방의회(시도의회, 시군구의회), 지방자치단체장(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선거에 적용되는 법입니다.
지금 국회에서 화두가 되는 것은 국회의원 선거입니다. 간단하게는 국회의원 수를 정하는 것이고 복잡하게는 각 지역구를 획정하고 선출직, 비례직 국회의원 수를 조정하는 등 방안입니다.
통칭 투표권이라 불리는 선거권을 가진 만 19세 이상이라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국회의원을 직접 뽑는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죠? 선거법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우리 동네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뽑을 수도 있고, 옆 동네와 함께 1명을 뽑을 수도 있습니다. 유권자로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Q:각 정당이 선거법 때문에 다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정당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영향력(국회의원 수)을 발휘하는 정당은 최근에는 대표적으로 5개를 꼽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배출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입니다. 각 당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하려 합니다.
국회 300명(결원 제외 298명) 중 민주당이 128명, 한국당이 113명입니다. 두 당을 합치면 241명으로 3분의 2가 넘습니다. 거대 양당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과반 이상 찬성과 반대로 모든 일이 이뤄지는 국회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세 번째로 많은 국회의원이 소속된 바른미래당은 29명,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각각 14명과 5명입니다. 나머지는 민중당 1명, 대한애국당 1명, 무소속 7명이죠.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정의당의 국회의원 수는 모두 합쳐도 48명에 그칩니다. 이들 3개 당은 선거법 개정에 적극적입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미온적이고요.
Q:그럼 패스트트랙은 뭔가요.
A:문제는 선거법 개정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각 당마다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법을 만들려고 하니 합의가 되지 않는 것이죠. 내년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에서 바뀐 선거법을 사용하려면 최종적으로 올해 4월 15일 전에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패스트트랙입니다.
패스트트랙은 국회선진화법에 있는 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뜻하는 말입니다. 신속처리안건에 지정되면 각 당 합의 없이 법안을 최종 표결에 부치는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습니다. 상임위 심의(180일), 법사위 회부(90일), 본회의 부의(60일)를 거쳐 본회의에 자동 상정됩니다. 최장 330일이 걸리는데, 그 전에 본회의에 회부될 수 있죠. 대다수 법안이 각 당 입장차로 표결도 못해보고 멈춰선 상태에서 나온 고육지책입니다.
물론 패스트트랙인 만큼,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우선 제적의원 과반수가 서명한 신속처리대상안건 지정요구 동의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지정동의는 제적의원 5분 3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합니다.
다수당이 자신 마음대로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지정하고 이를 통과시킬 수 있는 우려를 차단한 것이죠.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법안이 본회의에 올라오면 일반 법안과 마찬가지로 과반 이상 찬성으로 통과 여부를 결정합니다.
Q:패스트트랙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않나요.
A:앞서 이야기를 했듯, 민주당과 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에 미온적입니다. 한국당은 절대 반대하고 있고요. 민주당은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지정하는데 동참할테니 고위공직자법죄수사처 법안(공수처법) 등을 선거법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리자고 합니다. 그동안 다른 당의 반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중요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지정해 통과시키려는 것이죠. 선거법을 빌미로 공수처법을 통과시켜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민주당만큼 국회의원 수가 많은 한국당은 강하게 반발하는 상태고, 선거법 개정을 원하는 바른미래당 일부에서도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반면에 민주당과 평화당, 정의당은 패스트트랙에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함께 올리는 것을 찬성했습니다.
이 부분에서의 핵심 포인트는 바른미래당입니다. 패스트트랙은 현재 298명 국회의원 중 과반이상인 150명 서명을 받아야 지정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과 평화당, 정의당 국회의원 수를 합치면 147명입니다. 3명이 부족하죠. 무소속이나 소수당의 의원이 찬성해서 패스트트랙에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올리는 요구를 한다 해도, 패스트트랙에 지정이 되려면 5분의 3 이상 찬성이 필요합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합치면 142명입니다. 어렵게 패스트트랙에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올려달라고 국회의장에게 요구해도 바른미래당 없이는 지정을 못한다는 뜻입니다. 바른미래당이 선거법 개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이유입니다.
Q:바른미래당은 선거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A:맞습니다. 바른미래당은 평화당, 정의당과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유권자가 지역에서 인물을 보고 뽑은 지역구 의원을 줄이고 당을 보고 뽑는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선거법 개정안의 핵심 동력이었죠.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평화당, 정의당은 현재 국회의원 수(300명)를 늘리지 않는 선에서 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습니다. 그대로 추진하면 되는 것이죠.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연계한 부분입니다. 선거법 개정은 패스트트랙에 지정해서 처리해야 하는 시급한 법안이지만, 공수처법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두 번째는 선거법 개정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을 떠나 지역구가 줄어들 위험,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당을 떠나 지역구 의원은 반대합니다. 그런데, 대놓고 말을 못하니 명분을 찾았습니다. 선거제 개혁은 패스트트랙이 아닌 전통적인 방식의 여야 합의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침 국회는 선거법 논의를 위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라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가동 중입니다. 총 21명 중에 민주당 10명, 한국당 8명, 바른미래당 1명, 평화당 1명, 대한애국당 1명입니다.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자고 하는 의원들은 정개특위에서 오랫동안 논의했음에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항변합니다.
Q:선거법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A:정치권은 물론이고 유권자인 국민에게도 중요합니다. 국회의원은 입법권(법안발의)과 감사권(국정감사)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마음대로 국가를 운영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자신이 속한 지역과 단체를 위해 일을 하는거죠.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회는 철저하게 다수결의 원칙으로 이뤄집니다. 국회의원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각 당의 정치영향력이 커집니다. 국민이 알게 모르게 국회에서 이뤄지는 일 대다수가 국민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민주당과 한국당 등 거대 양당은 기존 체제 선거법으로 내년 총선을 치르는 게 유리합니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정의당 등 소수당은 선거법 개정으로 비례대표를 확대해야 21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판이 딸려오는 이유입니다.
[관련도서]
◇10대와 통하는 선거로 읽는 한국 현대사. 이임하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1948년 제1대 대통령 선거부터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까지 총 18번의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국회의원 선거 및 지방자치 선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한국 현대사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선거와 관련된 투표율과 득표율 통계, 다양한 정치 광고를 담은 선거 공보 등의 자료 사진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를 풍부하고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날치기 국회사. 김예찬 지음. 루아크 펴냄.
국회를 다룬 대중교양서다. 개원한 지 70여년 가까이 된 대한민국 국회. 적지 않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국회를 주제로 한 변변한 대중서 한 권 찾아보기 힘들다. 민주적 토론과 합의의 정신을 저버린 국회에 대한 대중의 실망이 무관심과 냉소를 불러왔기 때문일 것이다. '날치기'라는 키워드로 국회가 겪어낸 오욕의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대한민국 국회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 어떤 길을 지향해 나가야 하는지 살필 수 있다.
안영국 정치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