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귤레어, 디오반, 액토스, 라이도덤, 맥살트, 액토플러스, 레바티오, 아타칸, 심발타, 트리코. 이것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내로라하는 글로벌 제약 기업의 대박 난 신약이다. 이들 특허가 만료될 즈음 머크, 노바티스, 다케다, 엔도,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엘리 릴리, 애봇 랩스가 누리고 있던 132억달러 수입도 사라질 판이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에 수억달러씩을 투자했다. 노바티스도 마찬가지였다. 총수입 가운데 5분의 1이 고혈압 치료제인 디오반 하나에서 나오고 있었다. 결과는 자명하다. 화이자도 처방약 리피톨 특허가 사라지자 매출은 110억달러에서 30억달러로 곤두박질쳤다. 한때 대박 혁신이 '성장 절벽'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제약 부문 어디에서 마땅한 해답을 찾을 수가 없자 노바티스 이사회는 조지프 지메네즈를 불러들이기로 한다. 두 가지는 자명했다. 이 '특허 절벽'은 누구도 겪어 본 적 없지만 모두 겪을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살아남고, 기회가 올 것이란 점도 자명했다.
지메네즈는 세 가지를 문제로 보았다. 엄청난 투자에도 전략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실패가 분명한 데도 질질 끌고 있었다.
세 가지를 추진하기로 한다. 첫째 가장 먼저 개발 프로젝트 제안서 100개에서 시작해 25개, 10개, 마지막으로 3개만 추려냈다. 프로젝트가 많다 보니 정작 가능성이 보이는 아피니토 같은 표적 항암제는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둘째 매출이 사라지는 만큼 신시장을 찾아내기로 했다. 문제는 개발도상국 매출이 지지부진했다. 중국에는 판매사원을 매년 500명 늘리기로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기존 방식이라면 겨우 150명 남짓 채울 수 있었다. 전문 지식이 있는 판매사원 양성을 위해 리쿠르팅, 채용, 훈련을 겸한 노바티스중국상업대학을 열기로 한다.
셋째 마케팅 철학도 바꾸기로 했다. 약을 파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 바로 결과를 보여야 한다. 노바티스는 신약을 처방하기 전에 그 약이 효과 있을지 아닐지 알 수 있는 진단부터 제공하기로 한다. 넷째 판매사원은 숫자는 줄이되 질은 높이기로 했다. 자주 만나고 전화하는 대신 의사에게 신약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전문의약품에 문외한인 지메네즈를 택한 노바티스 이사회의 선택 결과는 성공이었다. 아피니토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중국 시장은 매년 38% 성장했고, 개발도상국 매출은 전체 24%까지 증가한다. 결국 디오반이 사라지더라도 매출에는 별 변화가 없을 거라는 재무 보고서를 월스트리트에 내놓을 수 있었다.
훗날 지메네즈는 세 가지를 교훈으로 얘기했다. 첫째 글로벌 기업조차 지속 성장엔 종종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이른바 '아웃사이드 인'이다. 둘째 노력보다는 잘못된 계획과 선택이 만드는 문제가 더 클 수 있다. 아피니토 사례를 보라. 셋째 젊은 직원들의 의견과 아이디어, 심지어 조기경보조차 경청하라.
노바티스는 긴 터널을 더 나은 모습으로 빠져 나온 몇 안 되는 기업이 됐고, 지메네즈 자신은 노바티스 최고경영자(CEO)가 된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