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제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정치 면에서 한국이 얼마나 자유로운 국가가 됐는지 절감한다. 올해 대학교 신입생은 2000년에 출생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으로부터 20년도 넘게 지난 후 태어난 세대다. 그래서 그들은 마냥 자유롭다. 나처럼 지난날 도청과 미행을 당할지, 한밤중에 건장한 남자들이 들이닥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연행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도 없다.
국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은 한국만이 아니었다.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미국에서도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광풍이 휘몰아친 적이 있다. 바로 매카시즘이다. 1946년 위스콘신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조지프 매카시는 1950년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미국 내에서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미국 상원에서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매카시가 폭로할 때마다 숫자도 늘어나서 피해자는 수만명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영화 산업에서는 300여명의 배우, 작가, 감독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해고당했다.
유명한 감독이자 배우인 찰리 채플린도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채플린은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소환됐다. 1952년 채플린은 영화 '라임라이트'를 홍보하기 위해 영국에 갔고, 이후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미국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때 채플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들은 미국 황색언론의 선동을 근거로 삼아 나를 중상모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 수 없다. 나는 미국 영주권을 포기한다.”
게임 질병코드 지정이 다가오고 있다. 이달 말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에 질병코드를 부여할 것으로 예측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WHO에서 게임 장애를 질병화하는 것으로 최종 확정하면 이를 곧바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아니 나를 포함한 국민 대다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함께 의술을 베풀고 있는 의사를 신뢰한다. 그러나 이번 질병코드 지정 시도는 이 같은 의사들의 인술과는 거리가 멀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의사의 자의 진단이다. 만일 진단하는 의사가 해당 '질병 원인'에 적대감이 있거나 진료에서 강력하게 금전상의 동기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왜 일부 의사협회가 2012년 '게임중독법' 지정을 자신들의 숙원 사업으로 표현했는지 상기해 봐야 한다.
그리고 의사의 '오진'에 의해 심신은 건강하지만 단지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 때문에 '게임장애자'로 낙인찍힌다면 훗날 그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결혼할 상대방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좋은 사람이지만 과거 청소년기에 '게임장애'로 치료 받은 적이 있다면 충격 받을 것 아닌가.
거의 90% 이상의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학부모는 의사 진단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게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지만 게임은 질병이라는 메시지에 학부모는 두려울 수밖에 없고, 게임을 필사의 노력으로 거부하게 된다. 자기 자식이 정신장애인이 된다는 데 눈 뜨고 볼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은 15년 만인 1954년에 막을 내린다. 그러나 채플린은 귀국하지 않고 스위스에서 삶을 마감했다. 당시 직장에서 추방되거나 박해 받은 수만명의 사람들이 그 이후 보상을 받았다는 소식도 없다.
매카시즘이라는 교훈을 역사속에서 배웠기 때문인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질병코드 지정을 유보했다. 미국심리학회는 DSM-5에서 게임장애는 아직 인과관계 등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추가 연구를 해야 한다고 표기했다. 그들은 한국의 일부 의사들과 달리 무척이나 신중하고 과거의 어리석은을 저지르지 않으려 한다. 매카시즘이라는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우려해서인가.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 jhwi@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