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탐방] 질긴 바이오플라스틱 비닐, 땅속에선 금세 사라져

울산에 위치한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 각종 실험도구가 가득한 내부 실험실 모습은 다른 연구실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들어진 연구 성과는 남다르다.

센터는 얼마 전 첨단 화학기술이 골치 아픈 환경 문제 해결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중요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이곳 연구진은 친환경이면서 내구성이 뛰어난 바이오플라스틱 비닐을 개발해 주목 받았다. 기존에도 땅속에서 쉽게 분해되는 비닐은 있었지만 내구성이 떨어져 실제 물건을 담을 순 없었다. 화학연이 개발한 비닐은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화학연 바이오화학연구센터가 개발한 바이오플라스틱 비닐. 힘을 가해 당겨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화학연 바이오화학연구센터가 개발한 바이오플라스틱 비닐. 힘을 가해 당겨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황성연 센터장 안내를 받아 들어간 4층 바이오플라스틱 합성 실험실에서 비닐 실물을 확인했다. 돌돌 말아놓은 흰색 반투명 비닐은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닐과 모양이 같았다.

두 손으로 비닐을 잡아당기자 일반 비닐과 같이 표면이 터지면서 투명한 가로줄이 생겼다. 늘어나기만 할 뿐 쉽게 끊어지진 않았다. 황 센터장은 “우리가 만든 비닐 강도는 낙하산이나 안전벨트 소재로 쓰는 나일론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래층에 있는 소재 인장 시험실에서 비닐 내구성을 보다 자세하게 확인했다. 검은색 인장 장비로 길쭉한 소재 막대를 잡아 아래위로 잡아당기는데, 원래 크기보다 5배 늘어나도 쉽게 끊어지진 않았다.

화학연 바이오화학연구센터 연구진. 사진 왼쪽부터 황성연 센터장, 박제영 박사, 오동엽 박사.
화학연 바이오화학연구센터 연구진. 사진 왼쪽부터 황성연 센터장, 박제영 박사, 오동엽 박사.

황 센터장은 “목재펄프, 게 껍데기 추출물을 바이오플라스틱에 활용한 결과”라며 “내구성이 그동안 나온 바이오플라스틱 비닐은 물론, 석유계 플라스틱 비닐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화학연이 개발한 비닐은 무엇보다 친환경적이다. 건물 옥상에서는 개발한 비닐이 땅 속에서 썩어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동엽 박사가 철제 용기에 담긴 검정색 흙을 헤집자 흐물거리는 비닐이 모양을 드러냈다. 비닐을 손으로 잡아당기자 미쳐 힘을 가하기도 전에 '툭' 소리를 내며 두 쪽으로 떨어져 나갔다.

오 박사는 “토양에 2개월 정도 노출되면 이렇게 쉽게 끊어지는 상태가 된다”면서 “더 오랜 시간이 흐르면 형체도 없이 소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비닐을 묻은 뒤 6개월이 지난 옆 용기의 흙을 아무리 헤집어 봐도 비닐 잔해를 찾을 수 없었다.

흙 속에 2개월간 묻어둔 비닐 모습. 미쳐 힘을 가하기도 전에 쉽게 끊어진다.
흙 속에 2개월간 묻어둔 비닐 모습. 미쳐 힘을 가하기도 전에 쉽게 끊어진다.

이 같은 화학기술력에 반한 많은 기업이 화학연에 기술상용화를 제안하고 있다. 센터는 지난달 24일 기술사업설명회를 열었고, 현재 100개가 넘는 기업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황 센터장은 “지금 주목받고 있는 것은 비닐이지만 포장재나 어망, 용기 등 다양한 분야에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면서 “여러 용도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맞춤형 응용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