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합의 불발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여당과 노동계가 '선(先) 비준 후(後) 입법'을 위한 여론몰이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가 '선 입법 후 비준'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다, 경영계가 ILO 핵심협약 비준 자체를 반대하고 있어 노동계 주장이 받아들여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득, 송옥주 의원(이상 민주당)은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ILO협회와 공동으로 '국제노동 정책토론회(1)-ILO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과 과제' 정책토론회 개최했다.
토론회는 좌장부터 발제자, 토론자 대다수가 노동계 측으로 채워졌다. 좌장은 최정식 국제사무직노조 한국협의회 사무총장이 맡았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과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가 주제 발표를 맡았다. 조용만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조충현 고용부 노사관계법제과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김근주 연구위원은 우리 노동계의 기준이 세계화 흐름 속에 뒤쳐져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기준에 부합되는 국내기준 마련이 요구되는 것은 '시대적 과제'인데 그러지 못하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위원은 엄격한 국내절차를 거치지 않고 우선적 비준(선비준)을 하는 국가도 있다고 전했다.
권오성 교수도 국내 제도 개선을 이유로 협약 비준이 지연되는 결과를 피하기 위해 비준 전에 시급하게 추진할 과제와 비준 후 시간을 두고 추진할 과제로 나눠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용득, 송옥주 의원은 ILO 비준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유럽연합(EU)은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EU FTA 체결 당시 약속한 ILO 핵심협약의 비준을 이행하라고 강력 요구한다”면서 “통상과 국익 측면에서도 ILO 핵심협약은 신속히 비준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 의원도 “ILO 핵심협약 비준은 보편적 노동권 보장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한 대한민국의 국격과도 관련된 문제”라면서 “ILO 핵심협약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과 노동계가 ILO 핵심협약 비준 여론몰이에 나선 배경은 지난 20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운영위원회가 비준에 관한 합의를 못 내고 논의를 종결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 기준에 맞게 국내 노동관계법부터 개정하고 비준한다는 '선 입법 후 비준' 로드맵을 추진해왔다. 국내 노동관계법 개정은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최근 경사노위가 사회적 합의에 실패함에 따라 ILO 핵심협약 비준 로드맵 첫 단추를 끼울 수 없게 됐다. 사회적 합의 무산은 경영계가 반대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경사노위가 노동자 단결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익위원 권고안을 발표하자 경영계는 반대급부로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제도 개선 문제를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경영계는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제도 개선 없이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경사노위는 노사의 양보와 타협을 끌어내지 못했다. 그러자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기존 로드맵을 포기하고 국회에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안을 제출해야 한다는 '선 비준 후 입법'을 내세웠다.
이와 관련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정부 입장'에 대한 브리핑을 연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 관련해 '선 입법, 후 비준' 원칙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만큼 이날 브리핑에서도 입장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안영국 정치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