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이슈와 관련해서는 미국이 요구하는 모든 기준을 따를 것입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리고 있는 '컴퓨텍스 2019'에서 기자와 만난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암(ARM)의 이안 스미스 부사장은 이같이 밝혔다.
스미스 부사장은 중국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에 대한 질문에 회사 공식 입장 외에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첫째로 파트너사(화웨이)를 존중하고, 둘째는 지금 상황이 매우 급박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ARM은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모든 것에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ARM은 중국 화웨이를 상대로 IP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미국 정부가 미·중 무역분쟁에서 화웨이 압박 카드를 꺼내면서 퀄컴, 인텔 등 미국 주요 칩 회사에 이어 ARM도 화웨이 압박에 동참한 것이다. 업계에서 ARM의 '참전선언'은 화웨이에 치명타를 준 것이라고 분석한다. ARM은 모바일용 칩 IP 강자다.
한 업계 전문가는 “대부분 모바일 집적회로(IC) 회사가 ARM의 백본을 쓸 만큼 이 회사는 탄탄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면서 “화웨이 칩 설계 자회사 하이실리콘(HiSilicon)도 예외는 아닌데, 새로운 제품 개발이 아예 중단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큰 타격을 입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하이실리콘이 자체 개발한 IP로 ARM을 대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ARM과 화웨이의 거래 중단은 한국 반도체 업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화웨이 모바일 기기의 '뇌' 격인 AP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화웨이에 메모리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국 매출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국내 중소 시스템반도체 회사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하이실리콘은 새로운 시스템 반도체 칩을 개발할 때 외주를 주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들과 협력하는 일부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체가 신제품 개발에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ARM의 IP 기반으로 한 새로운 칩 개발에 난항을 겪으면서, 협력하던 국내 업체도 차질을 빚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미스 부사장은 ARM의 보안 플랫폼 PSA(플랫폼 시큐리티 아키텍처)도 강조했다. PSA는 ARM 기반으로 설계되는 사물인터넷(IoT) 칩에 보안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플랫폼이다. ARM이 PSA를 고안하게 된 배경은 최근 칩 개발 양상이 보안보다 '속도'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스미스 부사장은 “IoT 칩 활용도는 늘어나는데 보안에 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다”며 “ARM이 자체적으로 1200명 IoT 칩 개발자를 조사한 결과 67%가 대부분 회사가 보안에 대한 기본 토대가 없고, 54%는 보안에 대해서 토론하기 힘든 분위기”라고 전했다.
ARM은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칩 표준화를 활용한 총 3단계 보안 플랫폼을 고안하고 있다. 마이크로컨트롤러용(MCU) IP인 '코어텍스-M' 시리즈에 PSA를 적용했고, 올 하반기에 고급 애플리케이션용 IP인 '코어텍스-A'를 위한 기준과 플랫폼도 마련할 예정이다. PSA 인증 제도도 마련해 참여 업체들이 보안 강화를 마케팅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ARM은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르네사스 등 외국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체와도 협력한다.
사무엘 치앙 ARM 시니어 디렉터는 “어보브반도체와 협력을 검토하고 있고, 한화테크윈과도 보안과 관련해 적극적 협의 중”이라고 소개했다.
ARM은 내달 11일 경기도 판교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열리는 ARM 테크데이를 통해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체와 PSA 세미나도 진행한다.
타이베이(대만)=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