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 있다. 독일군이 '에니그마'로 만든 암호를 해독해낸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앨런 튜링 이야기를 다뤘다.
앨런 튜링은 영국 정보부 비밀정보국(SIS) 부름을 받아 암호 통신 해독을 담당하는 임무에 투입된다. 암호 해독을 위해 복잡한 기계 제작에 착수하고, 윈스턴 처칠 대통령 신임으로 에니그마 해독팀장까지 오른다.
결국 앨런 튜링은 에니그마 해독에 성공한다. 연합군은 독일군 눈을 속이기 위해 선별적으로 해독된 자료를 사용한다. 상대 전술을 알지만 결정적 전투만 선별해 이기고 결국 전쟁에서 승리한다.
영화 제목 이미테이션 게임은 앨런 튜링이 1950년 발표한 논문 '기계도 생각할 수 있을까(Can Machines Think?)'에서 처음 고안한 게임이다. 그는 컴퓨터가 사람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면 컴퓨터도 생각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레딩대는 튜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컴퓨터가 인공지능(AI)을 갖고 있는지 테스트하는 '튜링 테스트'를 고안했다. 컴퓨터가 자신을 사람으로 속이면 AI를 지녔다고 인정하는 방식이다.
튜링 테스트를 하려면 컴퓨터 프로그램과 연결된 컴퓨터, 사람과 연결된 컴퓨터를 한 방에 설치한다. 심판은 양쪽 컴퓨터와 5번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후 대화가 자연스러운 한쪽을 사람이라고 투표하는데 컴퓨터가 심판단 3분의 1을 속이면 AI를 지녔다고 인정하는 구조다.
튜링 테스트를 처음으로 통과한 프로그램은 65년 만에 나왔다. 레딩대는 2014년 6월 '유진 구스트만'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출신 13세 소년으로 설정된 유진이 심판단 33%를 속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튜링 테스트는 AI 연구 초기 단계, 즉 지능에 대한 정의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고안됐다. 사람인 것처럼 심판단을 속이면 인간에 준하는 지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최근 AI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처럼 정형화된 알고리즘 기반이 아닌 딥러닝 기술을 토대로 사람의 학습 능력을 모방한다.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도 가능하다. 사진 한 장을 말하는 동영상으로 손쉽게 변환하는 기술도 등장했다. 이제 튜링 테스트로 컴퓨터가 AI를 갖고 있다고 판별하는 시기는 지났다. 급변하는 AI 능력이 우리 삶에 유익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고민하고 지켜볼 일이다.
박진형기자 j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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