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비자원에는 최근 3년 기준 연평균 3만7000여건 피해 구제, 3000여건 분쟁 조정 사건이 접수됐다. 의료, 금융, 자동차 등 소비자원 이외에 별도의 분쟁 조정 기구에 접수된 사건과 실제 소비자 피해는 발생했지만 번거로움 등을 이유로 분쟁 조정 접수를 포기한 경우까지 합치면 소비자와 사업자 간 분쟁은 훨씬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거래에서 사업자와 소비자는 상호 의존 관계에 있는 반면에 목적과 동기는 서로 다르다. 즉 사업자는 수입과 이윤, 소비자는 자신의 효용과 욕구 만족에 각각 관심이 있다. 이를 두고 소비자경제학자 토머스 가먼은 소비자 문제를 “시장이 불완전 경쟁 관계에 있고 사업자와 소비자의 관심이 다르기 때문에 존재하는 어려움”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시장 거래에서 소비자와 사업자 간의 크고 작은 갈등 및 분쟁은 필연인 측면이 있다.
또 시장경제에서 소비자와 사업자 간의 적절한 갈등은 오히려 사업자에게 연구개발(R&D)과 기술 혁신의 유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가습기 살균제를 비롯해 BMW 차량 화재, 라돈침대 사건 등에서 보듯 소비자와 사업자 간 갈등이 신속하고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단순한 불만을 넘어 시장 불신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비용을 증가시키게 된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정부 등 공공 부문이 해야 할 일은 양측의 이익이 상호 극대화될 수 있도록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합의를 유도, 갈등 수준을 적절히 감소시키는 일일 것이다.
지난날 소비자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은 주로 규제와 소송 측면에서 논의돼 왔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점차 '다루기 어려운 문제'가 증가하면서 규제와 소송 모두 소비자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써 한계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이유로 최근 소비자 분야에서도 제3자의 조정과 화해에 의한 분쟁대체해결(ADR) 제도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소비자기본법에 이미 소비자원의 피해 구제와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분쟁 조정과 같은 ADR 제도가 도입돼 있다.
그러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국내 주요 항공사의 반복된 분쟁 조정 내용 수락 거부나 대진침대의 집단 분쟁 조정 수락 거부 사례에서 보듯 분쟁 조정은 소비자와 사업자 가운데 어느 한쪽이 조정 내용을 수락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설령 양 당사자가 조정 내용을 수락하더라도 사업자의 지불 능력 한계로 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 소비자가 피해 보상을 받기 어렵다. 현행 소비자분쟁조정 제도의 한계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소비자 분쟁 조정의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소비자기본법 개정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먼저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 안에 담긴 '분쟁조정 내용 공표제도'는 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해서 소비자원 분쟁조정위에서 결정된 분쟁 조정 내용을 수락하지 않는 경우 그 내용을 공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전해철 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 안에 담긴 '피해보상금 대불제도'도 눈에 띈다. 사업자가 분쟁 조정 내용을 수락했음에도 사업자 자력으로 보상이 어려운 경우 소비자원이 소비자에게 피해보상금을 우선 대불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두 법안은 소비자와 사업자 간 분쟁 해결을 촉진하고 사회 갈등 비용의 최소화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앞으로 이해관계자와의 숙의를 거쳐 제도 도입 필요성과 세부 요건, 절차 등에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모쪼록 소비자와 사업자가 함께 상생할 수 있으면서도 사회 갈등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보완책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이희숙 한국소비자원 원장 leehs@kc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