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HW)기업과 소프트웨어(SW)기업 간 경계가 사라진다. 델EMC, IBM, 후지쯔, 퓨어스토리지 등 글로벌 HW기업이 서버·스토리지 등 장비위주 판매에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강점을 내세운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난다. 더 이상 HW성능이 얼마나 더 빠르고, 얼마나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지 내세우지 않는다. HW 성능 평준화와 기업 서버·데이터가 클라우드로 향하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 내부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SW에 강점 있는 기업 인수로 시장변화에 대응한다. IBM 레드햇 인수 등 대규모 거래뿐 아니라 퓨어스토리지 스듀어리듀스 인수 등 각자가 추구하는 SW역량 강화에 따른 인수전도 치열하다.
◇HW 기업, 빅데이터-AI-클라우드 기업 변신?...델EMC, 후지쯔, 퓨어스토리지, IBM등 글로벌 기업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
마이클 델 델 테크놀로지스회장은 최근 열린 '델 테크놀로지스 월드 2019'에서 '멀티 클라우드 시장' 정조준을 밝혔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구축과 운영을 단일화한 델 테크놀로지스 클라우드부터 VM웨어 퍼블릭 클라우드 협력 확대까지 단순 IT기기, 새로운 미래 비전으로 'HW'가 아닌 'SW'에 방점을 찍었다. 주인공은 단연 VM웨어 였다. 기조연설부터 VM웨어와 마이크로소프트웨어(MS)간 깜짝 협력을 밝혔다. 델 클라우드 인프라와 VM웨어 클라우드 시스템관리 SW를 통합한 '델 테크놀로지스 클라우드' 솔루션도 공개했다.
델 테크놀로지스 기업 포트폴리오도 HW보다 SW에 방점이다. 델테크놀로지스는 PC와 클라이언트를 담당하는 델, 데이터 인프라 솔루션 델EMC를 제외한 계열사 모두 SW 관련 기업이다. VM웨어, 피보탈, 버투스트림, 시큐어웍스 등 클라우드와 보안을 담당한다.
IBM은 AI시스템에 최적화한 서버 제품을 바탕으로 시장을 공략한다. 고사양 서버 제품은 단순히 성능향상뿐 아니라 AI시대에 최적화해 설계했다. 다양한 AI관련 SW와 연계하고 자체 딥러닝 솔루션 'IBM 파워AI 비전' 'IBM 스펙트럼 딥 러닝 임팩트' 등으로 경쟁력을 갖췄다.
최성환 한국 IBM 서버 솔루션 사업부 총괄 상무는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기술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HW가 필수”라면서 “IBM 파워시스템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원하는 AI기술, 안정성을 제공하고 뛰어난 학습 속도, 정보 수집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후지쯔는 기존 HW경쟁력을 바탕으로 'AI'솔루션을 선보이는데 적극 나선다. 일본 내 정부지원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컴퓨팅 기술력과 후지쯔 AI솔루션을 더한 '디지털 어닐러'를 선보였다. 디지털 어닐러는 일반 컴퓨팅 장비처럼 정확한 계산을 하는 용도가 아닌 '최적의 조합' '시뮬레이션'에 집중한다. 연내 국내 출시 계획이다. 이외 AI를 활용한 번역 시스템 등 컴퓨팅 기술을 바탕으로 AI산업 진출에 열을 올린다.
넷앱은 지난해 클라우드 사업강화 일환으로 쿠버네티스 기업 '스택포인트클라우드'를 인수했다. 이미 5년 전부터 기존 HW 중심 조직 변화를 위해 구조조정 단행, 클라우드 인프라, 클라우드 데이터, HW 3개 사업 분야로 조직 체계도 바꿨다. 전통 스토리지 업체에서 '클라우드 데이터 관리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을 꽤하기 위해서다.
퓨어스토리지는 올플래시 스토리지 다음 단계로 '데이터중심 클라우드 통합전략'을 선보인다. 지난해 클라우드 기반 중복제거 기술 기업 '스토어리듀스', 파일솔루션 기업 '컴퓨버드' 인수 등 클라우드 등 SW 역량 확보에 주력했다. 이를 바탕으로 플래시 백업 솔루션을 선보여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을 넘어 빠른 속도록 백업 데이터를 활용하도록 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배성호 퓨어스토리지 지사장은 “대부분 업무환경이 급격하게 클라우드로 넘어가면서 클라우드에서 데이터 서비스에 대한 고민도 함께 증가했다”면서 “온프레미스 환경에 있는 데이터를 클라우드에서도 동일하게 필요로하는 요구가 증가해 관련 제품을 선보인다”고 말했다.
◇HW는 평준화, 업무환경은 다양화로 변화요구...“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확산은 기회”
기전 HW업계가 SW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기기성능 대결로는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어려운 탓이다. 서버 시장은 10년 사이 빠르게 x86 서버로 재편됐다. 유닉스 서버를 채용하는 사례는 일부 금융권을 제외하고는 손에 꼽을 정도다. x86 서버가 갖는 빠른 확장성, 저렴한 도입비용, 등 장점을 바탕으로 시장을 확대했다.
최근 시장은 한 단계 더 나갔다. 서버와 스토리지를 활용하는 기업 업무환경이 바뀌면서 클라우드 시장이 빠르게 확장됐다. 과거 기업 업무가 단순 저장, 검색, 백업 용도에 한정됐다면 이는 기본으로 요구하며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연결 등 새로운 업무환경 최적화를 필요로 한다. 스타트업, 중견기업뿐 아니라 LG그룹, 대한항공 등이 클라우드 이전을 발표하면서 국내 변화 움직임도 빠르다.
김민철 IDC 선임연구원은 “기존 서버, 스토리지는 새로운 IT환경을 대비하는데 부족하다”면서 “단순히 메모리 사이즈확대, 디스크 I/O가 빨라지는 것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SW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무환경 변화와 퍼블릭클라우드 확대가 HW기업 위기로 작용했지만 오히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확대가 새로운 기회가 된다. 수십년간 투자한 데이터센터 등 온 프레미스 업무환경과 클라우드 서비스 간 연계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퍼블릭클라우드 사업자는 기존 업무와 연계까지 담보하지 못한다. 오히려 HW 벤더가 클라우드 사업자와 손잡고 다양한 솔루션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시장이 변화한다.
김 연구원은 “몇 년 전 클라우드 사업자가 기존 HW벤더 역할까지 모두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엔터프라이즈 영역에서 다양한 업무환경을 관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협업 중심으로 체계를 바꿨다”면서 “기업이 퍼블릭 클라우드로 모든 업무를 이관하더라도 기존 온프레미스 환경에 대한 투자, 보안 이슈 등으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시장에 대한 성장은 당분간 지속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